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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분노(忿怒) 2012/05/21 08:27
Dan풍

▲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1,500 픽셀 정도의 큰 그림으로 진주성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1,500 픽셀 정도의 큰 그림으로 진주성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1,500 픽셀 정도의 큰 그림으로 진주성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1,500 픽셀 정도의 큰 그림으로 촉석루와 의암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시민 장군의 동상이 있는 진주성(晉州城) 북문인 공북문(拱北門, 북쪽에 임금님이 계심)입니다.

▲ 제 11회 '논개(論介) Festival'이군요. www.jinjunongae.com.

▲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건축물, 촉석루(矗石樓).
개인적으로 3대, 5대 이런 말에 알러지 납니다. 말이 안되니까요. 3대 계곡 탐라, 칠선, 천불동 이런 식은 말이 안 되죠.

▲ 붉은 원, 이곳으로 의암(義巖) 내려가는 길인데 못찾아 10분 가까이 길을 찾았죠.
옛 건축물에는 주련(柱聯)이나 현판(懸板), 편액(扁額)이 걸려 있습니다.

▲ 진주성 북문인 공북문(拱北門)에서 동쪽 촉석루(矗石樓)까지 왔습니다.

▲ 1960년 시민의 성금으로 중수가 되었다고 하네요. (6.25 불탐) 진주사적보존회.

▲ 조선조 명필인 송하(松下) 조윤형(曺允亨, 1725~1799)이 쓴 촉석루(矗石樓) 현판. 촉석루의 북쪽에 걸려있습니다.
유당(惟堂) 정현복(鄭鉉輻, 1909~1973)이 쓴 촉석루(矗石樓) 현판은 촉석루 남쪽 벼랑가에 걸려 있고요.
촉석루 남쪽 안에는 은초 정명수가 1960년에 쓴 남장대(南將臺)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현판이 3개죠.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대통령이 쓴 촉석루(矗石樓) 현판은 4.19의거 때 철거됐습니다.

▲ 촉석루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진주 남강 '천수교', 한자는 모르지만 오래 살라는 뜻으로 지은 듯?.
진주가 1,000년이 된 기념으로 만들었다는 '천수교'.

▲ 촉석루에는 여러 현판들이 있는데 한국동란 때 소실되어 다시 지으면서 각기 문중에서 글을 써 받았다고.
2004년 촉석루의 단청을 새로 했습니다. 청남(菁南) 오제봉(吳濟峯, 1908~1991)의 영남제일형승(嶺南第一形勝). 승字는 약어입니다.
현판(懸板)을 풀어보면 촉석루가 ‘영남에서 지세(地勢)나 풍경이 제일 뛰어나다’라는 뜻입니다.

▲ 기념사진 찍어주는 아저씨.

▲ 진주는 산꾼이 많은 동네이지만 토요무대 프로그램 보니 무용도 발달된듯?

▲ 수변 무대가 꾸며지고 있더군요. 11회 논개 페스티벌 준비중인듯? 논개 투신한 의암이고요(右).

▲ 촉석루(矗石樓)에서 내려다 본 의암(義巖)입니다.

▲ '길치'는 어디가도 티가 납니다. ^_^ 촉석루(矗石樓)에서 의암(義巖)내려가는 길을 못 찾고 있죠.

▲ 진주성의 동문인 촉석문(矗石門)으로 나왔죠. 남강 산책로 둘러보려고...

▲ 촉석루(矗石樓) 입구.

▲ 촉석루(矗石樓)는 이 문을 통해서만 들어갑니다.

▲ 동문인 촉석문(矗石門)으로 내려갑니다.

▲ 의암가는 길을 찾으려고 진주성의 동문인 촉석문(矗石門)으로 나왔죠.

▲ 동문인 촉석문 밖에 나오니 바로 변영로(卞榮魯, 1897.5.9~1961.3.14)의 논개(論介) 시비(詩碑)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 교과서로 읽던 메마른 느낌이 아닌 시인이 왜 '거룩한 분노(忿怒)'라고 표현했는지 단박에 필이 오며 전율이 오더군요.

    ◈ 거룩한 분노(忿怒) ◈

    2012 5. 19 (土) 덕유산 육십령 부근 가려면 중간에 장계를 지나는데, 지날 때마다 논개(論介)와 변영로(卞榮魯, 1897.5.9~1961.3.14)의 '거룩한 분노'가 오버랩 됩니다. 논개 생가에 들리지 않으면 큰 죄인이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 있죠. 잘 아시듯이 논개는 기생이 아니고 최경회의 후처입니다. 성은 주씨(朱氏)이고, 본관은 신안(新安, 中國)이며, 전북 장수(長水) 생이라 '장수의 딸'로 불립니다. 원래 양반가의 딸이지만 아버지 주문달의 사망(3살)과 집안의 어려움이 겹쳐, 숙부(주달무)에게 의탁하게 되죠. 그런데, 이 숙부(주달무)가 어린 조카를 김풍헌 집에 민며느리로 보낸다는 약조를 하고 돈을 받고 달아납니다. 이 사실을 안 논개의 어머니(밀양박씨)는 친정집으로 도망(피신)가죠. 모자란 아들을 혼인시켜 보려다 돈을 떼인 김풍현은 주달무와 박씨부인을 관아에 고발합니다. 결국 박씨부인은 체포되어 장수 관아에 갇히고, 장수현감 최경회의 심리로 재판이 열립니다. (6살 이른 봄) 당연히 무죄 선고를 받았겠죠. 풀려났는데 돌아갈 곳이 없는 모녀는 침방관비를 자청, 최경희 장수 현감의 부인인 김씨 부인의 배려로 관-내아에서 심부름을 하며 살게 됩니다. 그해 늦가을, 무장현감으로 전직된 최경회를 따라가고요. 朱논개(論介) 9살 때 영암군수로 전직된 최경희를 따라갔으니 거의 가족같은 생활을 합니다. 최경회가 사도시정으로 갈 때(14살) 수행을 하고, 17살이 되어서야 최경회의 소실이 되죠. 논개 나이 17살, 최경회(崔慶會)의 나의 59살입니다. 존경하는 아버지일 수도 있고 '지아비'일 수도 있는 관계라고 보아지네요? 모친상으로 최경희가 고향(화순)으로 갈 때 논개는 따라가지 못하고 고향 장수에서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낙향한 최경회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니 그의 나의 환갑(61살). 의병의 인원 수를 더 늘릴 필요가 있을 때 현감으로 있던 장수가 떠올라 1592년 장수현 월강평야에 의병청을 설치했고, 최경회의 군영에는 논개의 내조가 넘쳐났죠. 최경회가 전라우도 의병장으로 장수로 와서 의병을 모집하고 훈련시킬 무렵 의병 훈련 뒷바라지에 논개는 최선을 다합니다. 논개(論介) 19살. 드디어, 1593년 4월 21일 경상우방사로 임명되어 호남출신 의병들을 인솔하여 朱논개(論介)와 같이 진주성으로 들어갔죠. 논개(論介) 20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제수된 최경회를 따라 논개는 2차 진주성 전투에 참여한 겁니다. 논개는 성안에서 전투의 뒷수발을 했지만, 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남강에 투신 자결한 후, 기녀(妓女)로 위장,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의암으로 유인, 열 손가락에 낀 가락지로 왜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 순절(殉節)하는 일생을 살 게 된 것이죠. 왜 '거룩한 분노(忿怒)'가 일어났는지 알려면 임란 3대대첩이라는 진주성 1차대첩에 대해 알아야 하니, 잠깐. ^_^ ● 진주성은 외적을 막기 위해 삼국시대부터 조성된 성으로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유서깊은 곳이다. 고려말 우왕5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이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본래 토성이었던 것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직후에는 성의 중앙에 남북으로 내성을 쌓았다. 1592년(선조 25) 10월 5일 진주에 이른 나가오카 다다오키[長岡忠興] 휘하의 왜군 약 2만 명은 수천 죽제(竹梯:대나무 사다리)를 만들어 진주성을 공격, 진주목사(牧使) 김시민(金時敏)이 지휘한 3,800명의 조선군과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조선군은 성문을 굳게 닫고 화약을 장치한 대기전(大岐箭)을 쏘아 죽제를 파괴하고, 마른 갈대에 화약을 싸서 던지거나 끓는 물과 큰 돌을 던지는 등 필사적으로 싸운 끝에 10배에 이르는 왜군의 공세를 분쇄하였다. 왜군은 10월 10일에 6일간의 대접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주했는데, 이 싸움에서는 의병대장 곽재우(郭再祐)의 응원이 적과 아군에게 심리적으로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싸움의 승리로 다른 경상도 지역을 보존하였을 뿐만 아니라, 적으로 하여금 호남지방을 넘보지 못하게 하였다. 싸움에서 참패로 위신이 손상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1593년 6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 등에게 복수전을 하도록 특별 명령을 내렸다. 왜군은 6월 15일부터 작전을 개시하여, 18일까지 함안(咸安)·반성(班城)·의령(宜寧)을 점령하고, 19일 3만 7000명의 병력이 진주성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진주성에는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경상우병사(右兵使) 최경회(崔慶會), 충청병사 황진(黃進), 사천현감(泗川縣監) 장윤(張潤), 의병장 고종후(高從厚), 이계련(李繼璉), 민여운(閔汝雲), 강희열(姜希悅), 김해부사 이종인(李宗仁) 등이 이끈 3,400명의 병력과 6∼7만 명의 일반민이 있어, 피아의 전투력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싸움은 6월 22일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왜군은 귀갑차(龜甲車) 등 특수한 병기로써 파상공격을 거듭하고,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 끝에 거의 모든 장병이 죽고, 29일에 진주성은 함락되었다. 성이 함락되자 왜군은 성안에 남은 군·관·민 6만 명을 사창(司倉)의 창고에 몰아넣고 모두 불태워 학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축도 모두 도살하였다. 이 싸움은 임진왜란 중에 벌어진 전투 가운데 최대의 격전으로 꼽히는데, 비록 싸움에는 패하였으나 왜군도 막대한 손상을 입었다. [출처] 진주대첩 [晉州大捷] 네이-버 백과사전 진주성(晉州城)이 함락되고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합니다. 어려서부터 몸을 의탁한, 아버지 같은 존재(存在)이고, 지아비인 최경회(崔慶會)의 죽음은 논개에게 '거룩한 분노(忿怒)'를 일게 만들고 기녀로 신분을 위장, 진주 남강 촉성루 앞 의암(義巖)에서 의로운 생을 마감하게 되죠. 이때 그녀의 나이 20살, 최경회 나이 62살입니다. 명동님에게 당시 논개가 열 손가락에 꼈다는 가락지, 가락지가 모자라 주위 기녀에게 빌려서 깍지를 꼈다고 말해주니, 장난인줄 알고 웃는 겁니다. 믿지를 않는 거죠. 6살 어려서부터 관아생활이 몸에 밴 논개로서는 지아비를 떠나보낸 비분강개와 7만명의 군,관,민 순국의 비운과 분노를, 기녀로 변해 왜장과 남강에 투신하는 게 자신이 할 수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겁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동양평화를 위해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저격한 안중근의사와 약한 아녀자의 몸이지만, 내 한 몸 던지는 기개(氣槪)가 어찌 그렇게 같을 수가 있는지요?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情熱(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娥眉(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江(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교과서에서 읽던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의 시(詩) 논개(論介)'! 진주성 촉성루와 의암이라는 현장을 마주하니, 의암(義巖)에 올라서 보니 변영로 시인이 느꼈을 감정이 때(時)를 달리해서 다가옵니다. 진주성은 함락되어 6~7만에 이르는 군.관.민은 갇혀, 불에 타죽고, 지아비는 남강에 투신한 상황에서 왜 '거룩한 분노(忿怒)가 일었는지 중. 고딩 국어시간 한참을 지난 시점에서 느끼게 되는 불찰(不察)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시대를 비추는 삶을 산 변영로(卞榮魯, 1897~1961) 시인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이래서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인가 봅니다. 진주성(晉州城) '승리의 Party'에 일침을 가한 朱논개(論介)의 의거(義擧)! 순국(殉國)한 진주성 7만명의 군,관,민과 장수현감 최경회(崔慶會), 朱논개(論介)님의 영전에 고개를 숙입니다. ★ 제 본(本)이 진주(晉州, 舊 晉陽) 姜氏라 평소 진주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 의암 위쪽 의암사적비에 있는 현판(懸板) 義妓論介之門(의기논개지문)이 잘못 되었습니다. 의기(義妓) 자(字) 중에서 의(義)는 맞는데 기(技-기생 기)자가 틀렸습니다. 논개는 기녀가 아니거든요. 장수현감 최경회(崔慶會)의 후처로 그를 따라 장수-영암- 장수 다시 진주까지 와서 전쟁뒷바라지를 했는데, 기녀(技女)라뇨? 그이는 전투지원병입니다. 여군(女軍)이죠. 의녀(義女) 논개(論介)로 바꿔야 됩니다. 아직도 기생 논개가 고쳐지지 않네요. ● 논개와 최경회 논개(5세) 숙부가 남의 집에 민며느리로 주기로 해놓고 돈을 받고 도망. 논개 어머니가 논개를 데리고 친정으로 피신하나 체포되어 수감. 논개(6세) : 최경회(48세) 장수현감 최경회의 심리로 재판하여 무죄판결, 모녀가 침방관비 자청. 논개(9세) : 최경회(51세) 영암군수로 임명되어 따라 감. 논개(14세) : 최경회(56세) 사도시정(미곡과 물품을 관장하는 벼슬)에 수행(?) 함. 논개(17세) : 최경회(59세) 소실로 들어 감 논개(20세) : 최경회(62세) 최경회(崔慶會)가 진주성 함락을 자책하여 남강에 투신 자결하자 논개가 왜장을 유인하여 함께 진주 남강에 투신 함.

▲ 아무리 찾아봐도 의암(義巖) 내려가는 길이 없어서 매표소 아가씨에게 물어봤더니, 오잉! 촉성루 왼쪽에 내림길이 있다고.

▲ 남강 산책로는 진주성 촉성루에서 동(東)과 서(西)길이 끊기더군요. 아무리 찾아봐도 의암(義巖) 내려가는 길이 없습니다.

▲ 촉성루 왼쪽에 의암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라......

▲ 다시 촉성문으로 들어가 의암내려가는 길을 찾았죠. ^_^

▲ 남강 멀리, 진주가 1,000년이 된 기념으로 세워졌다는 '천수교'.

▲ 2차 진주대첩의 패배로 진주성이 함락된 후, 6만 진주성민이 불타죽은 원혼이 떠도는 남강, 그 중심에 의암(義巖)이 있죠.

▲ 朱논개가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었던 의암(義巖)

▲ 의암(義巖)에 올라서 보니, 朱논개(論介)가 당시 느꼈을 비분과 변영로 시인이 느낀 '거룩한 분노(忿怒)'가 동시에 다가옵니다.

▲ 강 가운데 돌이 우뚝 솟아 있다하여 붙인 촉석루(矗石樓)를 의암(義巖)에서 바라보는데 민폐가 크네요. 다른 양반들 위에서 의암 사진을 못찍으니까요. 의암에 올라간 홈리스를 찍을 수는 없으니 빨리 자리를 비켜야죠. ^_^

▲ 5월 25일(金)~ 27일(日) 열리는 제 11회 논개 페스티벌을 준비하나 봅니다?

▲ 의기(義妓) 자(字) 중에서 의는 맞는데 기(技-기생 기)자가 틀렸습니다. 논개는 기녀가 아니거든요. 장수현감 최경회(崔慶會)의 후처로 그를 따라 장수-영암- 다시 진주까지 와서 전쟁뒷바라지를 했는데, 기녀(技女)라뇨? 의녀(義女) 논개(論介)로 바꿔야 됩니다. 아직도 기생 논개가 고쳐지지 않네요.

▲ 명암(明庵) 정식(1683∼1746)이라는 선비가 진주 사민(士民)들로부터 금품을 모아 논개 의거의 징표로서 1722년(경종 2)에 다듬고, 18년 뒤인 1740년(영조 16) 가을에 진주우병사 남덕하(南德夏)가 왕의 명을 받고 이듬해 봄에 비를 세우고 비각을 지었고 현판에는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라는 남덕하의 글씨를 썼다는데, 모를 때야 의기(義妓)로 현판을 썼지만, 장수 태생 최경회의 후처이고 진주성싸움에서 후방지원군, 여군역할을 한 사실을 알은 지금 현판은 떼어내야 맞지 않을까요?

▲ 공짜가 아니고 사진 찍는 분과 상의하라고 적혀 있습니다. ^_^

▲ 아이들이 朱논개(論介)가 어떤 마음에서 의암(義巖)에서 남강으로 뛰어내리게 되었는지 알고 갈까? 굼금해집니다.

▲ 다시 진주성 동문인 촉석문(矗石門)으로 내려갑니다. 점심 먹어야죠.

▲ 촉성문을 나가면 남강 장어집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 11회 논개 페스티벌 현수막 왼편 뒤 길건너에 남강장어를 시작으로 강나루장어, 유정장어집이 있죠. 오른쪽은 진주교.

▲ 남강에 오면 장어구이? 의암 위에 올라서 보고 진주성 동문인 촉성문을 나와 남강에 흔한 장어집에 들어갔죠. 유원지나 "관광지 제일 앞에 있는 큰 집(식당)은 피하라" 격언은 되뇌어 지는데, 속아보자 기분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전 지리산 내려와 가끔 찾았던 노인동 천황식당 화반(花飯), 비빔밥을 먹고 싶은 저와, 명동님은 장어구이 먹고싶고... 둘 중 하나는 양보해야? 결국 진주성 동문 앞 제일 크고 넓은 집 장어구이 선택했는데 허당. 매워서 3점 먹고 명동님은 땡. 비록 냉동이라지만 우럭매운탕도 제 입맛에는 허접입니다. 음식은 시장통으로 가야...

▲ 단체생활이라 공북문(拱北門) pm 1:30 약속입니다.동문 촉석문에서 밥먹고 급하게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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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룡와이번 05.24 10:31

    아 논개의 안타까운 일생이 잘 읽었습니다. 열 가락지끼고 투신이라...숙연해집니다. 신고

  • Dan풍 05.26 03:06

    현장에서 보는 것과 교과서적인 메마른 지식은 질이 다르더군요.
    저도 논개의 일생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의암에 서니, 진주성을 직접
    걸음걸이로 대하니 그 느낌이 실전적이 되더라고요.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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