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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가장 그리고 가족 2008/10/23 10:39

에쿠스LEE


아버지는 집안에서 
절대 권력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허수아비일 때가 많다. 
모든 독재자에게 비극이 있듯이 
우리 집에서 가장 높은 신분을 차지한 
아버지에게도 비극은 있었다. 
그 비극은 혼자만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과 비슷한 비극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집이 실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머리와 입으로만 생각하고 명령했을 뿐 
한 번도 가족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권력은 형식적인 지위나 신분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정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집안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흘러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아버지는 권위만 높을 뿐 
실제로는 완전한 무권력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권력이 없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분명해졌다. 
환갑과 칠순을 넘기고 경제적 역할마저 축소되자 
아버지는 말 그대로 우리 집의 왕따 신세가 되었다. 

이 세상에 아버지를 의도적으로
왕따 시키는 가족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현재 우리 집의 엄연한 현실이다. 
대신 어머니와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통속이 되어 어머니 공간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그 같은 조짐은 이미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함께 얘기를 나누다가 
아버지가 나타나면 갑자기 입을 다물고 
우르르 자신들의 공간으로 사라지던 일이 그것이다. 
이 광경은 아버지의 슬픈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지배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영국왕' 처럼 
권위 있게 군림했지만 물 위를 떠도는 기름과 같았다. 
그 물과 기름은 한 그릇 안에 있었지만 
타인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그 대신 나머지 가족들은 풍부한 자유를 누렸다. 
이처럼 우리 가족은 언제나 
두 개의 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공식적 가족이요, 
다른 하나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비공식적 모성가족이었다.

전인권 교수의 '남자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일부를 잘라 옮겨 왔습니다.
이제 인생의 반백을 살고
남편과 아내라는 인연으로...
아버지와 자식이라는 인연으로...
30여년의 세월을 가족이라는 구성이되어
힘들때도 즐거울때도 같이 울고 웃으며
긴 세월을 함께 살아온 아내와 자식...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 봅니다.

전인권 교수는 이 글에서...
자신의 유년시절 가족관계에 대해 
"어머니와 자식들의 관계는 수평적이었던 반면 
 아버지와의 관계는 수직적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아버지는 권위의 상징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권위가 높아지는 것을 
부지런히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고 회고 하는가 하면

(아버지의)권위주의의 거미줄(?)을 
걷어내는 방법으로 "아버지 살해"를 제시합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형성되어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아버지를 정확하게 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 긍정을하자고 끝을 맺습니다.

어쩌면... 저의 자식들도 애비의 권위주의적...
가부장적 독선에 질려서 마음속으로 수도없이
이 애비를 "살해"했는지... 또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지
조용히 생각하고 반성해 보는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아들 놈이
모 그룹 신입사원 모집 3차 면접 시험에 가기위하여
어울리지 않은 정장을 차려입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면서...
뭐라고 한마디 격려의 말은 해 줘야겠는데
머리가 텅비고 하얗게 변해 버리는 순간...
"아!!! 나도 늙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그저 "잘 하고 오라"...는 지극히 상투적인
그말 한마디만 건넨 것이 못내 마음이 아립니다.

벌써 올해도 벽에는 세장의 달력이
창밖으로 들어 오는 바람에 이리 날리고 저리 접히면서
오늘은 24절기중 열 여덟번째 절기인
상강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의 글 동무님들...
깊어가는 가을...비내리는 가을날 아침에
조용히... 가족이라는 살가운 단어...
그 정겨운 단어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그런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2008년 상강 아침... 에쿠스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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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뽀리 10.23 10:45
에쿠스님...주제 넘게 조금 나서봐요...
꼭...말로만 표현도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따뜻하게 잡아주는 손, 포근하게 어깨를 감싸주는 손길...
그러한 스킨쉽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신고
커피뽀리 10.23 10:47
저희 아빠도 좀...권위주의적이세요...
그래서인지 아빠와 거리감이 좀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 서슬이 퍼렇던 우리 아빠가 많이 소약해지셨다라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어느새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신고
커피뽀리 10.23 10:50
그냥...어느날이었던가...아빠랑 외식을 나가던 길이었는데...그냥 팔짱을 껴봤어요 ㅎㅎㅎ
왠지 무섭던 아빠 모습에 선뜻은 안되었지만...막상 조금만 용기내서 해보니 쉽더라구요 ^^*
그 팔짱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외식은 더 즐거운 시간이었던거 같아요
에쿠스님두...잘다녀와라라는 말과 함께 어깨를 한번쯤 다독여주었다면 더 좋았을꺼란 생각이 들었어요...^^* 신고
han7704 10.23 11:42
에쿠스님 글에 동감이 갑니다...연배가 저보다는 조금 많으신것 같은데...
출,퇴근할때와 월급날이 가장 싫은 40대 가장입니다. 험한 세상으로 나갈때나 힘든 하루 마치고 귀가할때나 관심이 없는 가족...20년 가까이 월급 적다고 투정만하지 단 한번도 기쁜 마음으로 월급을 받고 수고했다는 말한마디 없는 아내... 신고
han7704 10.23 11:52
주식해서 돈 많이 까먹고 맞벌이 하는 힘든 아내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요즘은 전에 없이 가끔씩 울컥거리는 마음은 숨길 수 없고...아내의 남편에 대한 태도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습득 되고...집안의 질서...사회 생활의 기초...아이들 걱정되고...방법이 없네요...좋은 조언 좀 부탁합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