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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에 아주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2010/07/12 01:04

브론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하는..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아니하다는 문구이지요.

이말은 가끔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잘못 쓰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손자병법에 대한 오해이며, 오용입니다.

내가 "지피지기"할 수도 있지만,

적도 역시 "지피지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나도 "지피지기"하고 있고, 적도 "지피지기"하고 있다면,

나도 승리하고 적도 승리한다는 것인데,

전쟁에서 피아가 모두 승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다만, '지피지기'를 통해 다가오는 싸움이 나에게 불리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면,

그 불리한 싸움에 말려들지 아니하고 좀 더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기를 기다림으로써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는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지요.

손자병법의 이 유명한 문구, 즉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문구는,

오늘날의 자산시장 참여자들에게도 매우 소중한 문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산시장에는 수많은 참여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들 모두는 자산시장의 "매수", "매도"의 전투에서 승리하고자 합니다.

자산시장에서의 승리는 더 높은 수익률, 혹은 더 안전한 수익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자산시장에는 수많은 참여자들이 존재하지만,

그 모든 참여자들이 모두 균질적이거나, 대등한 정보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혹자들은 수동적으로 시장의 흐름에 적응하고 추세에 편승하고자 하지만,

더 큰 영향력과 정보력, 자금력을 갖고 있는 자들은

의도적으로 시장의 흐름을 어느 정도 통제 혹은 장악하고자 합니다.

물론 시장의 흐름을 어느 정도 통제/장악하고자 하는 자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의 흐름을 통제하고자 하는 세력들 역시 균질적이지 아니하니,

서로 다른 방향으로 통제하고자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세력과 세력간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격렬한 전투 이후에는 타협이 발생하거나,

일방이 몰락하면서 강력한 추세의 응집력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세력균형이 깨어져 승부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면,

이때까지 관망하며 전투를 지켜보던 제3의 세력들 및 추세추종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처럼 팽팽하고 격렬한 전투 이후에 승부추가 기울기 시작하면,

추세추종 투자자들의 본격적인 참여와 더불어 전투에서 패배한 측의 로스컷이 아울어져

격렬한 추세 충격파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거대금융시장에서 거대 세력간의 포지션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외적인 매우 드문 일만도 아닙니다.

어느 무리는 인플레이션을 상정하여

Commodity와 귀금속에 Long, 장기채권에 Short 포지션으로 베팅하고,

어느 무리는 장기저성장 혹은 디플레이션을 상정하고

장기채권 Long, Commodity Short 포지션에 베팅하고....

어느 무리는 유로화 강세를 상정하여

달러화를 차입해 유로화 표시 채권을 매입하고,

어느 무리는 유로화 약세를 상정하여

유로화를 차입해 Gold 혹은 달러 표시 채권을 매입하고 등등....

거대 금융시장에서 거대 세력들 간의 충돌이 발생할 때,

더 큰 자금력과 더 큰 정보력과 더 큰 정보전파력을 갖고 있는 세력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큰 세력이 펀더멘탈의 도도한 흐름을 잘못 읽었다면,

결국은 더 큰 세력이 전투에서 패배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마치 100만 대군이 상대방의 10만 대군에게 대패할 수도 있는 것처럼....

전쟁에서 천시, 지세, 인화가 중요하듯이,

금융시장의 전투에서는 펀더멘탈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비록 펀더멘탈이 매우 중요하고 기본적인 변수이긴 합니다만,

펀더멘탈이라는 녀석도 금융시장의 움직임으로부터 독립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사람들의 심리를 움직여

펀더멘탈의 궤적 자체를 이동시킬 수가 있는 것이지요.

가격 움직임이 뚜렷해지게 되면,

시장은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 많은 자료들과 근거들과 이론들을 스스로 양산해 갑니다.

예를 들어,

어느 큰 손이 미국 국채와 남유럽 국가들 국채 CDS를 동시에 대량매입한다고 가정해 보지요.

큰 손의 행위에 의해 미국 채권가격 상승, 미국 이자율 하락,

남유럽 국가들 CDS 가격 상승, 남유럽 이자율 상승

등의 초기 가격움직임이 발생합니다.

초기 가격움직임이 발생하면,

시장은 이러한 가격움직임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일시적인 움직임인지,

아니면 펀더멘탈적 근거를 갖고 있으며 중장기 추세를 형성할 만한 충격파로 이어질 수 있는지...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 문제, 국가신용등급 문제

등등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이제 시장은 초기 가격움직임을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냈습니다.

초기 가격움직임이 추세추종형 세력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초기 가격움직임에 역행하는 포지션을 설정한 참여자들의 로스컷을 유발해 내고,

시장의 가격움직임을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들이 확대재생산되어 가면서

초기 가격움직임이 확대/강화되어 갑니다.

(이러한 가격움직임으로 인해 유로화에서 달러화로 자금이동을 초래하여

달러 대비 유로 약세라는 환율 움직임을 발생시키게 됩니다.)

이로 인해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조달비용은 더욱 높아지고,

국채의 Roll Over 혹은 신규발행에 어려움을 겪게됩니다.

금융시장의 가격움직임이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재)발행을 더욱 어렵게 하고,

국채 조달비용을 더욱 증가시킴으로써 남유럽 국가들의 문제는 더욱 심화됩니다.

결국 남유럽 경제의 펀더멘탈이 더욱 위협받게 되는 것이지요.

남유럽 위기는 7,500억 유로의 유럽 구제금융메카니즘에 대한 합의로 인해,

그리고 스페인의 국채 (재)발행 성공(아직까지는...)에 의해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초기의 가격움직임을 형성하기 위한 1차 행위(미국 국채 매입, 남유럽 CDS 매입)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 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초기의 가격움직임에 반대되는 포지션들의 과잉누적

(초기의 가격움직임의 반대편에 섰던 세력들의 실탄의 소진과

유로화의 과도한 고평가)

2) 유로권의 "불감청고소원"적 태도

3) 화장발/조명발을 입힐 수 있는 그럴 듯한 근거(남유럽 재정적자/국가부채)

자, 이제 초기의 가정, 즉

"어느 큰 손이 미국 국채와 남유럽 국가들 CDS를 동시에 대량매입"으로

되돌아가 봅시다.

이때의 "어느 큰 손"은 실제로 존재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특정의 거대한 단일세력이 아니라

다수의 작은 세력들의 우연한 포지션 일치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명확히 밝혀낼 근거자료들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통상적인 생리,

즉 기존 추세의 반전과 새로운 추세의 초기적 형성은

군중적 성격의 모래알적인 소액 투자자들이 아니라

강한 응집력을 갖고 있는 선도세력들의 움직임에 의거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 선도세력들이 A세력일 수도, B세력일 수도, C세력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선도세력들이 상황을 오판할 수도 있고,

때로는 너무 일찍 움직였을 수도 있고,

때로는 조금 늦게 움직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세력도 모든 상황을 100% 정확하게 판단하고,

100% 정확하게 대응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선도세력들도 상황을 서로 다르게 판단할 수도 있고,

서로 상반되는 포지션을 구축하여

거대 포지션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금융시장의 중요한 초기 혹은 말기 움직임은 어떠한 형태로든 선도세력들의 행위와

선도세력들간의 전투에 의해 결정될 확률이 높다는 것 그 자체이겠지요.

선도세력들은, 대부분의 경우 더 높은 수익률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만,

때로는 눈 앞의 이익보다는,

더 큰 중장기적 이익과 통제력의 강화를 위하여

당장의 눈 앞의 이익을 포기하는 행위들을 하기도 합니다.

산업의 현장에서,

경쟁기업을 도태시기기 위해 제살깎아먹기가 될 수 있는 가격전쟁을 벌이기도 하고,

글로벌 통화시장에서,

자국의 통화가치의 완만한 절하가 궁극적으로는 더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의 붕괴를 막아내기 위해 일시적인 통화강세 정책을 펴기도 하고...

상황에 대한 통제력의 강화,

혹은 추세의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적절한 포지션 규모의 확보,

혹은 경쟁세력 구축(crowding out) 등등을 위해

각각의 선도세력들은 목적의식적으로 행동합니다.

따라서 다양한 선도세력들의 이해관계를 읽고, 그들의 목적과 의도를 읽고,

금융시장에서 그들이 의도하고자 하는 가격움직임을 읽고자 하는 노력들이

단지 '음모론'으로 치부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도세력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와 의도,

그 목표와 의도를 현실화시켜 낼 이들의 주체적 능력 ,

이들의 목표와 의도의 현실화에 유리 혹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황(천시와 지세)

등등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손자병법에서 말한 '지피지기'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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