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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2019/03/20 05:48
푸른강
제목 없음

어머니


   내 나이 70이 넘어도 엄마 생각은 간절하다. 월간 현대문학에 올린 김동리 소설 까치 소리를 읽으며 주인공 어머니 기침 소리가 나의 경우와 같아서 공감한 바 있다. 오래전의 작가 김동리 선생 생존 시의 일이다. 원고지 160매 정도의 짧지 않은 소설에서 어머니 기침 발작으로 몸살을 앓는 장면은 바로 내가 겪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천식이라 하는 모진 기침은 겨울만 되면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 까치 소리 연관하여 아리는 고통스러운 모습을 실감 나게 한다. 천식 환자인 어머니가 죽여달라는 호소로 숨 막히게 하는 기침의 모질 성을 표현의 극치로 몰았다. 까작 까작 아픈 속을 긁어내는 듯한 까치 소리가 천식 기침과 어울리면 마치 수술 자국 상처를 후비는 듯 아프다.


   나도 어린 시절이라 엄마와 함께 자면 콜록콜록으로 시작하는 기침은 그대로 발작이라 할 정도로 모질다. 목이 막히는지 날 살려다오 하면서 울부짖는 모습은 곁에서 견디며 보기조차 괴로웠다. 온몸이 오싹오싹 조여드는 따가움이 칼날로 속살을 후빔 당하는 기분이다. 기침에 좋다는 조청을 끊지 않았고 기침에 효과 있다는 민간요법은 총동원해 적용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러다가 여름이 오면 그 기침이 없어졌다. 겨울철만 되면 불청객으로 오는 천식 기침은 주위 사람들을 봐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주위에 천식 기침을 앓는 사람이 당시는 마을마다 매우 많았다.


  내가 자라나 힘이 들면서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일주일간 치료받으니 기침이 훨씬 낫게 되어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병원 사무장이 나의 외족 아저씨라 나를 부르더니 주사 놓을 줄 아느냐고 했다. 내가 동물에는 자주 놓았고 간혹 근육주사는 사람에게도 놓았다고 했다. 그러면 이 처방전을 가지고 가서 약국에서 사라고 한다. 주사제는 엉덩이 근육에 소독하고 놓으면 된다고 했다. 주사 부위와 사용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어서 고마웠다. 계속 입원시킬 수도 없는 일이고 병원에 오는 거리도 머니 열흘에 한 번씩 와서 진단받으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날로부터 천식약 주사는 내가 정성을 들여 실시했다. 일주일 지나니 기침이 멎었다. 그래도 보름 정도 계속 치료하니 기침이 없어졌다. 그래서 해마다 기침이 나는 겨울이면 이런 치료를 계속하니 천식 기침이 완전히 사라졌다. 언제 기침을 해냐는 듯 엄마의 살려달라는 말도 다시는 없었다. 병원 사무장 아저씨 말로는 병원에서도 처방을 쉽게 아니하는 비싸고 좋은 약을 처방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리하여 엄마의 천식 기침은 없어지고 이제 겨울이 와도 엄마의 천식 기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의료시설이 좋은 현재에 견주면 아득한 원시 시절 이야기다. 농촌에는 돌팔이 의사가 사람의 건강을 유지하던 시절이었다.


   환갑이 지나고 칠순을 넘겨 팔순이 되도록 기침은 영원히 사라졌다. 내가 직장에 출근하는 시간이면 반드시 따라 나와 잘 갔다 오라고 손을 흔든다. 나오시지 말래도 듣지 않으셨다. 저만치 가다 돌아서 보면 아직도 손을 흔들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런 자세다. 이제는 너무 민망해서 내 몸이 보이지 않도록 빨리 가는 방법밖에 없다. 항상 출근 때는 골목에서 인사하고 달리는 듯 나는 사라지곤 했다.


  90세에 들면서 나이를 자꾸 낮추는 엄마 주장이다. 누가 나이를 물으면 87세라 하신다. 언제 들어도 늘 87세다. 바르게 가르쳐 드린다고 90세라 일러 드리면 아니라고 역정까지 내신다. 자꾸 그러시더니 전기밥솥에 자꾸 밥을 지어야 한다고 전선 코드 플러그를 자주 빼고 꼽고 하셨다. 그래서 아내가 맞지 않는 플러그를 덧씌워 놓았다. 밥을 하시려 플러그를 꽂으니 안 되기 때문에 엄마는 이웃집에 가서 꽂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와서 보니 꽂지 못하게 해 둔 것을 알고 고장 났다고 거짓말을 한다.


  다른 노인 같으면 온갖 상욕 질로 분탕을 하지만, 우리 엄마는 욕은 절대로 하지 않으신다. 손녀를 넷이나 키웠지만 가시네 소리는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나도 자라면서 욕은 전혀 배우지 못했다. 나는 친구들과 놀다가 친구가 나보다 힘이 모자라 욕으로 달려들면 욕지거리로는 도저히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아예 피해 버린다. 차라리 패자로 물러서기 마련이다. 아마도 욕하는 버릇은 엄마에게 배우는 일 같았다. 욕을 못 하는 엄마는 얼굴빛을 일그러뜨리며 분을 참기에 어려워하신다. 성나서 동내 골목을 다니며 낯선 사람 나타나면 어떻게 왔냐고 다가간다. 마을에 원정 도둑이 설쳐서 엄마를 만나면 말없이 도망가 버린다. 그래서 엄마는 농번기 텅 빈 우리 골목 파수꾼이 되신다.


  한밤중 곤하게 우리 부부가 자는 방에 방문을 열고 깨운다. 왜 저녁을 주지 않느냐는 불만이시다. 내가 아까 우리와 같이 저녁을 드셨잖아요 하면 언제 줬느냐고 불평하신다. 우리 부부에게 비상이 걸렸다. 엄마 상태가 이상해진다고 생각되었다. 요사이 혼자 주무시니 너무 적적하셔서 정신 공황 상태가 온 것 같았다. 저녁참을 드리고 엄마 이부자리를 모두 우리 방으로 옮겼다. 우리 부부가 의논하여 합의된 결과다. 우리 방은 거실처럼 커서 세 사람이 자도 넉넉하다. 침대방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자도 편안하다. 내가 알기로는 치매라는 것이 가족들로부터 따돌림받는다는 생각이 깊어져 생기는 병일 수도 있다. 치매 초기에 가족들이 귀찮고 성가시다고 대꾸도 없이 방임하면 더 악화하는 일이다. 같은 방에 자는  이후로는 저녁밥 왜 안 주느냐고 하는 말은 없어졌다.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엄마 안부 여쭈려고 와서 방안을 살펴보고 할머니와 같은 방에 함께 지내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보기 드문 효부 났다고 크게 웃는다. 맞다. 맞는 말이다. 아내가 효부라고 나도 그렇게 안다. 아내가 시어머니와 같은 방에 자기 싫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엄마와 함께 우리 부부가 한방에 지내니까 엄마의 우리를 믿는 마음이 더 포근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새벽녘에 엄마가 일찍 일어나 밥솥 전기 코드 꼽는 일도 없어졌다. 수시로 대화가 일상화되니 엄마의 불평도 없어진 일이다. 날로 엄마의 기뻐하시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그러던 엄마가 어느 날 밥을 자꾸 줄이더니 며칠간 죽도 안 먹겠다고 하셨다.  한 시간 가까이 답답하다고 하며 호흡 곤란한 모습이더니 잠자듯 눈을 감으셨다. 정신건강은 좋다고 믿었으나 말씀은 한마디도 않으셨다. 곁에 누님이 와서 기다려도 딸에게도 할 말씀이 있을 법했는데도 말이다. 기력의 쇠잔해짐은 94세의 나이가 너무나 무거웠던 것일까? 세상의 짐이 그렇게도 견딜 수 없었나요. 진달래가 산비탈을 핏빛으로 적시던 날 엄마를 아버지 곁에 맡기고 오는 걸음은 한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 글 : 박용 6에세이집 2019.0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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