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꿈꾸게 된 동기
어릴 때부터 문학을 좋아한 동기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젊은 시절 농촌에서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자라나 신기한 자연현상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느꼈다. 이른 봄 장독대 옆 양지바른 화단에 흙살을 찢고 돋아나는 난초 새싹의 함성을 표현하고 싶고 파랗게 겨울 추위를 견뎌낸 보리가 아름다워 세월의 풍광에 넋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청년 시절 중학교도 못 한 지식으로 문학을 택한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문학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못하고 평생을 문학 생도로 살아온 셈이다.
문학을 어느 정도 알게 되니 김동리 선생님이나 목월 선생님을 닮고 싶었다. 두 선생님은 나에게 문학 진로를 열어주신 계기다. 당시 대학교도 나오지 않았지만, 문학으로 대가를 이루었고 교수직을 가진 일로 인해서다. 학력과 관계없이 열심히 공부만 하면 시인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꼴망태와 소바리에 나무를 실어나르는 일과 강의록 공부를 하며 시와 소설 읽기에 호롱불 밑에서 눈이 멀 지경이었다. 현대문학 월간지와 시문학지를 정기구독하면서 문학이 뭔가를 골똘히 익혔다. 한 인생을 담아야 제대로 된 작품을 남긴다는 의지를 키우고 작품 쓰는 방법을 익혔다.
박재삼 선생님께 편지통신으로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조윤제 박사님의 잘해보라는 격려 서신도 받았다. 이름도 없는 산골 무모한 청년에게 귀찮아 않으시고 답 편지를 손수 써 주시는 배려가 너무나 고마웠다. 조연현 선생님의 글에서 문학지원자가 응모원고 봉투에 손가락 끝 마디를 잘라 동봉한 기이한 이야기도 읽었다. 아무래도 정신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문학지망생의 암울한 마음을 나타낸 글이었다. 문학작품에 성과의 자랑과 재주를 담는다기보다 자기 인생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차츰 굳어져 갔다. 평생을 함께할 인생의 반려 같은 무모함도 저지른 일이다.
""어느 후배의 이야기에 작가 지망생으로 서울에 가서 현대문학사에 시키지 않은 심부름도 하고 청소도 하는 일을 열심히 했으나 다 허무한 생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일찍이 문학을 포기하고 낙향하며 생활인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는 금융기관의 단체장이다. 꿈이 꿈으로 끝날 바에야 일찍 버려야 옳은 일도 있나 보다. 남의 글을 많이 읽으면 마음의 눈이 밝아 옮을 느끼게 된다. 그냥 독자가 아닌 자기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 눈에는 저자의 의도가 먼저 눈 여김이 되기도 한다. 남의 마음을 감동시키려면 내 마음이 먼저 그 길을 걸어봐야 했다.
내가 쓴 글에서 "인류 마지막 에너지는 좋은 생각의 동기유발이다. 지하자원의 에너지도 아닌 어진 마음의 사랑하는 마음이다."란 구절을 댓글로 좋아하는 것을 본다. 출판계를 뒤흔들었던 유명작가의 작품이 표절이라고 여러 곳에서 검색된다. 표절한 유명작가는 한두 사람도 아니다. 문학 수련을 지름길로 가자니 이런 폐단이 생긴 일이다. 멋진 문구가 있으면 필사 연습으로 익히는 발 빠른 욕심 때문이다. 즉 남의 좋은 글귀를 자기 것으로 수집해 만드는 지름길 문장수련 공부다. 이는 자기 두뇌에 삭혀서 그 글귀보다 더 몰두시킬 말을 만들어야 하지만 우선 훔쳐다 쓰면 빠르고 쉽다. 인터넷 환경에서는 이런 일이 그냥 덮고 넘어가지 않는다. 기계적인 검색에 걸리기 마련인 세상이다.
문학이 돈과 결부되면 부패하기가 악취 나는 폐기물보다 더하다. 이름난 많은 문학상에도 뒤 소문의 시끄러움이 잦다. 원인은 사치스러운 상금과 명예라는 허울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역사가 지나가면 훗날 주초위왕처럼 허위가 드러나기 마련인 것을 부끄러움을 스스로 만드는 행위다. 문학 공부에 필사 공부가 왜 필요한가 생각해보니 빨리 자기 개인 사전을 만들어야 우선 원고독촉의 난색을 피한다. 또 인기 있는 글쓰기가 편해진다. 남의 글을 가져다 활용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표절 이야기로 시끄러우니 어느 문인은 좌불안석 두려워한다. 이런 생각은 공연한 걱정이다. 필사 공부로 버릇들이지 아니하면 그런 실수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감동적인 글귀라도 한번 읽고 넘어가서 다시 그대로 써내지지는 않는다. 그 유명 글귀가 자기 글로 쓰려고 하면 먼저 그 글의 원글부터 기억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필사공부를 허용하는 국어 교사가 있다면 교사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대문호의 자질이 충분한 재원의 천재라도 이 습관 때문에 명작의 태동을 멈추게 하는 일이다. 식품의 본질을 도외시하고 양념에만 공을 들이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명품의 맛깔을 빼앗아 버리고 어찌 식도락의 명품이라 하겠느냐 말이다. 문학이 문학 외의 권력 기능으로 변하는 사회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불행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사회가 아무리 생존경쟁의 동물 근성으로 변하더라도 인성의 어진 덕목으로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는 문학이다. 문학이 인간다운 아름다움을 지켜내지 못하면 사회의 질서는 허무러지고 만다. 숭고한 감성의 바탕 위에 올바른 정신문화가 문학으로 꽃피는 시대가 그리워진다. ( 글 : 박용 2017.12.0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