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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의 회상에서 2017/02/09 20:52
푸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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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기간의 회상에서


   20대에 공무원으로 출발하여 50대 들면서 명예퇴직을 하였으니 무려 23년을 봉사했다. 일요일과 공휴일을 근무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였으므로 호시절이라 느끼지도 못했다. 내무부에서 바로 발령받아 내려온 시장이 어느날 갑자기 불렀다. 시장실에는 마침 시장 혼자뿐이었다. 얼굴을 보니 좋은 인상은 아니나 성난 얼굴도 아니다. A4용지 서너 장짜리를 건네며 이것 다시 써서 가져오라는 명령이다. 선 채로 받아서 넘겨보니 행사에 시장 인사 말씀 원고였다. 이거 누가 썼던 겁니까? 하니 총무과에서 썼단다. 어이가 없어 하면서 피식 웃고는 다시 써서 시장인 자기에게 바로 가져오라는 말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고칠까 바느질하듯 결말을 꿰매 버린다. 내가 시장 인사말을 많이도 썼지만 이제 벗어난 줄 알았으나 또 누가 어설프게 생색내는 시늉을 했나보다 하면서 썼다. 먼저 행사의 성격과 내용을 파악하고 간단한 글이라 빨리 작성할 수 있었다. 인사 말씀을 다 작성한 뒤 우리 주무계 차석에게 고칠 내용이라도 있나 하고 읽어보라 했다. 수정할 곳을 찾기 어렵다고 해서 시장실에 전하고 오니 반가운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여자 동기생이었다. 시청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가는 길에 보고 싶어 연락했단다.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가야 한다며 구내매점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나보다 나이는 3살이나 많지만, 학교는 같은 반에 다녀서 동기생이다. 이제 50세가 되는 동기는 나이답지 않게 아직 젊게 보였다. 신랑을 잘 만나서 여유 있는 생활에 늙는 일도 여유가 있었나 싶었다. 음료수를 마시면서 웃는 모습이 어릴 때 얼굴이 떠오른다. 이 친구는 졸업할 때에 나이가 17세였으므로 처녀티가 났다. 그때도 매우 고운 얼굴로 기억된다. 우리는 어리다고 상대도 아니 할 그때가 생각난다. 나는 그래도 운 좋게 중학교 입학시험에 일등을 했다고 잊지 않은 모양이다. 시청민원실에 일 보러 왔다기에 안 되는 일이라도 내가 도와줘야 할 일이라도 있냐고 물었다. 아니란다. 지방세에 착오가 있어서 항의하러 왔더니 담당자가 실수했다고 미리 실토하고 바루어 드리겠다는 다짐을 받고 가는 중이란다. 어찌나 똑똑한 아낙인지 혼이 난 담당 공무원을 떠올려 본다.

    요즘 사는 생활 이야기와 아이들 키워낸 이야기며 하고 싶어도 못한 일들까지 엄청 많은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남편의 사업으로 인하여 관공서에 자주 다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염집 살림만 하는 아주머니는 아니다. 전매서에 다니는 동기 친구 만났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야기에 열중한 모습을 자세히 보니 졸업할 때의 아름다운 얼굴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 뒤에도 동기회에서 두어 번 만난 기억이 난다. 대구 크라운호텔서 열리는 동기회 때는 영천의 다른 친구와 같이 내 차로 참석했다. 오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자기 집을 방문하여 내려주고 손수 끓인 차도 얻어 마셨다. 그런데 이 여자 동기는 죽었다는 소식이다. 나보다도 오히려 젊게 보이던 동기가 빨리 죽다니 슬픈 소식이다. 그때 본 그 고운 얼굴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모습의 천사이길 명복을 빌어본다.

   안 그래도 그 여자 동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저 친구와 결혼했으면 행복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자꾸 마누라와 비교가 되고 마누라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만큼 비례하여 그 친구는 더 복스러운 여자라고 생각된 것이다. 이런 마음이 위험하다는 생각도 옅어진 느낌이다. 제대로 만났으면 내 인생의 멋진 반려라 생각되기도 했다. 모두가 지나간 헛꿈이라 생각해도 아쉽기만 했다. 지나온 인생의 발자취는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 허황한 꿈은 청춘 시절에나 꾸어야 할 꿈일 뿐이다. 50대를 공자는 지천명이라 했다. 50세를 임박한 나이에 새로운 인생관을 정립해야 할 때다. 정확히 지금은 40대라 불혹의 나이에 든다.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할 나이다. 인생 방향의 잘못된 길을 바꾸어서는 안 될 일이다. 천명을 알라 한 공자의 인생관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만약에라도 길을 잘 못 갔다면 큰일 날 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공직자가 가정부터 건전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움에 더욱 그럴 수는 없었다. 나의 잠시 생각은 일장춘몽일 뿐이었다. 만약에 마누라가 아닌 그 친구가 나의 정상적인 마누라가 되었다면 나는 아주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다 젖혀두고라도 일찍 죽어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다는 비극이다. 세대의 평균수명도 많이 남겨두고 가 버리면 남편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인가는 생각하기도 몸서리치는 일이다. 70대에 들어선 지금 생각하니 잠시도 마누라 없이는 살기가 어려워진다. 눈에 보이고 안 보이는 곳까지 마누라의 손길이 나를 온전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일도 원천적으로 마누라 덕택이라 생각된다. 날로 마누라의 보살핌이 예사롭지가 않은 일이다.

   아이들 대학입시 때는 갓바위 공들이기가 연례행사다. 나는 그런 미신적인 것은 믿지 않았지만, 집에서 갓바위까지 오가는 수고는 자가용 차로 열심히 도와주었다. 가족이라는 마음을 응결시켜주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자식도 엄마의 정성에 감동하여 더욱 공부에 분발하게 되고 무엇보다 마누라 마음이 흡족해져서 몸과 마음의 건강이 함께 좋아진다. 갓바위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동쪽으로 영천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서 진취적인 감흥이 좋고, 산소공급을 받은 육신은 혈액순환의 고조로 건강을 지켜준다. 공직의 임무 때문에 마누라에 대한 배려가 너무 소홀했던 일들을 되뇌어본다. 마누라가 우울해 하는 기분이 보이면 "나는 좋은 선물을 받았다"하면 눈이 번쩍하는 마누라를 발견한다. "우리 장인어른의 선물이 세상에 가장 좋은 선물인 줄을 이제야 알았다." 마누라의 미소가 이제야 아름답다고 느껴본다. 공기의 고마움을 몰랐던 일처럼 마누라의 고마움을 늦게야 깨닫는다.
( 글 : 박용 에세이4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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