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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뇌물 2016/08/04 14:17
푸른강

내가 받은 뇌물
 

   내가 공직에 있을 때 뇌물을 받은 적이 있다. 퇴근해서 쉬고 있는데 이웃 마을에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이 찾아왔다. 손에 무엇인가 들고 있었는데 손수건에 싼 물건은 계란 7개였다. 70세가 된 늙은 아주머니 집에서 키운 암탉이 낳은 계란이라고 한다. 계란 7개를 모으려면 아마도 보름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암탉 한 마리 배합사료도 없는 당시에는 달걀을 매일 낳는 일도 드물었다. 이 귀한 걸 왜 가지고 왔느냐고 하니까


    "하도 고마운 마음에 드릴 것이라곤 이 계란뿐이라서요"


    "아주머니 이런 일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부터는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이 많은 어른이 정성들여 가지고 오신 귀한 계란을 거절하면 너무 박절할 것 같아서 받기는 했지만 마음은 편치가 못했다. 그렇다고 돌려 보내면 자기 정성을 너무 알아주지 않는다고 편하게 생각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 담당자는 아니었지만 같은 민원실에 근무하면서 담당자와 옥신각신 하길레 무엇인가 이렇게 소란할까 하여 알아보았더니, 아주머니는 주민등록을 할 수 없는 처지란다. 아주머니는 호적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먼저 호적을 찾아와야 된다는 담당자의 주문이다. 주민등록 일제정비로 새로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주민등록부를 살펴보니 개가해서 살고 있는 집안의 시숙 집 동거인으로 등재되어 있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딸을 낳아 시숙 앞으로 출생신고를 한 상태다. 남편은 이미 사별하고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불우한 여인이다. 남편은 딸만 달랑 하나 두고 죽었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살고 있는 딸은 호적상 시숙의 딸이고 자기와는 관계가 없게 기록되어 있다.


    구 주민증을 보니 주민등록 신고는 되어 있었다. 당시는 확실한 호적의 근거를 연계하지 않았으므로 증명발급이 가능했다. 이웃 동내에 살고 있으므로 평소에도 아는 아주머니다. 구 주민증을 만들 때 집안 조카가 호적계장으로 있었는데 그분에게 부탁하라고 했더니, 개가해 왔다고 집안의 수치로 생각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 주민증의 글씨도 그분의 필체로 쓰여 있었다. 어렵더라도 호적을 찾아야만 했다. 처음 시집을 어디에 가셨는지 물었다. 윗마을 생천에 성씨 집안에 갔다고 했다. 아마도 이름은 모를 것이고 시어른 택호를 알려 달랬더니 다행히 택호를 알고 있었다. 그 마을 이장을 찾아가 시어머니 택호로 호주 이름을 찾았다. 그리하여 수소문 끝에 시아버지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 집안 호적부를 찾아내니 오래된 구 호적부까지 들추어야 했다. 구 주민증의 이름이 거기에 올려져 있었다. 최남이 씨였다. 구 주민증을 만들 때는 호적계장 조카의 덕이었는지는 몰라도 이름이 제대로 등록된 일이 다행이었다.


    호적부를 어렵게 찾아서 주민등록부를 다시 만들고 새로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했다. 이제 동거인이 아닌 세대주로 합법적인 명확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호적상 아직도 처음 결혼한 집안의 호적부에 등재된 사실은 바꿀 수도 없고 구태여 바꾸어야 할 필요도 없다. 이미 남편은 오래전에 사망했고 재가로 간 곳의 남편도 사망했기 때문이다. 딸은 큰아버지의 딸로 호적에 이미 올라 있으므로 사회생활에도 오히려 그대로 두는 편이 옳았다. 신호적법은 남편과 이혼하면 친정 호적으로 되돌아가지만, 이혼도 아니므로 거기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젊은 나이 같으면 인권을 찾기 위해 자기 호적을 별도로 만들어야 하지만 이제 70 나이에 그럴 필요도 없다. 이런 일을 본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가냘픈 여성으로 얼마나 많은 고민과 괴로움을 겪었을 것인가는 가히 짐작이 간다.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받아 쥔 아주머니는 춤을 출 듯 즐거워했다. 동네방네 다니며 자기도 이제 주민등록증을 갖게 되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조카마저 귀찮다고 죽을 때가 다 되어 주민등록증 무슨 필요가 있냐고 나무란 일을 손안에 직접 들고 보니 하늘을 나를 듯 기뻤던 모양이다. 학교 교육 혜택도 받지 못하고 농촌에서 어렵게 살아온 여성의 표본이다. 당시 모녀는 밭떼기 하나로 연명하며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1975년의 이야기니 우리나라 온 국민이 어렵게 살아온 시절이다. 농사로 생활하기 어려우니 염소를 키우며 날마다 강변에 모녀가 염소를 몰고 다녔다. 염소 아줌마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아주머니다. 개가해 왔다고 가장 가까운 조카조차 가문에 누를 끼칠까 걱정이고 멀리하는 눈치니 누구 하나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는 처지다. 이제 국민 된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한 아주머니가 삶의 보람을 느끼는 일이 반갑게 느껴졌다. ( 글 : 박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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