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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管鮑之交) 2009/06/09 10:17
달공이

 

관중(管仲)과 포숙아(鮑淑牙) 사이와 같은 사귐이란 뜻으로,

 

시세(時勢)를 떠나 친구를 위하는 두터운 우정을 일컫는 말이다.

 

춘추 시대 초엽, 제(濟)나라에 관중(?~B.C. 645)과 포숙아라는 두 관리가 있었다.

 

이들은 죽마 고우(竹馬故友)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관중이 공자(公子) 규(糾)의 측근(보좌관)으로,

 

포숙아가 규의 이복 동생인 소백(小白)의 측근으로 있을 때

 

공자의 아버지 양공(襄公)이 사촌 동생 공손무지(公孫無知)에게 시해되자(B.C. 686)

 

관중과 포숙아는 각각 공자와 함께 이웃 노(魯)나라와 거(莒)나라로 망명했다.

 

이듬해 공손무지가 살해되자 두 공자는 군위(君位)를 다투어 귀국을 서둘렀고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정적이 되었다.

 

관중은 한때 소백을 암살하려 했으나

 

그가 먼저 귀국하여 환공(桓公:B.C. 685~643)이라 일컫고

 

노나라에 공자 규의 처형과 아울러 관중의 압송(押送)을 요구했다.

 

환공이 압송된 관중을 죽이려 하자 포숙아는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제 한 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시려면 관중을 기용하시오소서.”

 

도량이 넓고 식견이 높은 환공은 신뢰하는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를 맡겼다.

 

이윽고 재상이 된 관중은 과연 대정치가다운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倉廩實則 知禮節(창름실즉 지예절)]’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衣食足則 知榮辱(의식족즉 지영욕)]’고 한

 

관중의 유명한 정치철학이 말해 주듯, 그는 국민 경제의 안정에 입각한

 

덕본주의(德本主義)의 선정을 베풀어

 

마침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첫 패자로 군림케 하였다.

 

이같은 정치적인 성공은 환공의 관용과 관중의 재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이긴 하지만

 

그 출발점은 역시 관중에 대한 포숙아의 변함없는 우정에 있었다.

 

그래서 관중은 훗날 포숙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나는 젊어서 포숙아와 장사를 할 때 늘 이익금을 내가 더 많이 차지했었으나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를 위해 한 사업이 실패하여

 

그를 궁지에 빠뜨린 일이 있었지만 나를 용렬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일에는 성패(成敗)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벼슬길에 나갔다가는 물러나곤 했었지만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운이 따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싸움터에서도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나를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가 계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


실패하여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때 자신의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재물을 모으기에 급급하는 것보다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것에 힘을 쏟는 것이

진정한 성공의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성투하십시오

달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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