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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참성단 2011/11/15 22:12
Dan풍

▲ 강화 후포항, 장곶돈대와 석모도 사이의 바다인데, 물살이 무척 빠르더군요.

보통 10분이면 건널 수 있는 코앞의 섬도 역류에 배를 띄우면 강화도에서는 한 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가로 사이즈 1300픽셀의 큰 그림으로 강화도 Bus 노선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저는 1300번 강화좌석버스(1700원) 종점인 화도(마니산)에서 여기 '선수'까지 걸어왔지만 1, 4번 Bus 타고 와도 됩니다.

마니산 능선에서 가장 긴 구간이라 상봉산(255m) 아래 장곶등대를 택하기도 했지만 후포항에서 조개를 사려는 이유도 있습니다.

▲ ▼ 석모도(石母島)는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2km 남짓한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섬으로

외포도 선착장에서 대부분 배를 타지만 이 곳 장곶돈대 쪽 '선수선착장'에서도 석모도 가는 배를 탈 수 있습니다.

외포→석모도  선착장에서 30분 간격(07:00~21:00) 운항. 왕복 어른 2,000원.
승용차 도선료 왕복 1만4,000원. 문의 여객선터미널(932-6619), 삼보해운(홈페이지 www.kangwha-sambo.co.kr).

▲ 바다 건너 석모도 바로 앞에 해명산(309m)가 있는데 오늘은 아무 것도 안 보이네요.

▲ 선수선착장이 있는 장곶돈대.5진(鎭) 7보(堡) 53돈대(墩臺)는 외적을 막기 위한 요새들이지만 멋진 조망 포인트 역할도 합니다.

▲ 1, 4번 강화 Bus가 '선수선착장'까지 다닙니다. 여기서 참성단까지 약 5.8~9km를 오르게 됩니다.

▲ '강화 나들길'은 2010년 까지 8개, 130여 km의 걷기 코스가 개발되었고.
올해(2011) 개통한 교동길과 개발 중인 석모도와 서도면(주문도, 볼음도)의 길까지 보태면 조만간 13개 코스가 됩니다.

▲ 장곳돈대(해안초소-조선조)가 있는 '선수선착장'에서 am 11:13 산행 시작, 상봉산(254.6m) 11:53 이네요.

▲ "마리산 산신령님 별 탈없이 산행할 수 있게 해 주세요." - 진가락님 -

▲ 제일 왼쪽은 나들길이 있는 북일곶돈대(北一串墩臺), 돈대는 옛날 해안 초소죠.  조선 숙종 때 지었습니다. 마을은 장화리 낙조마을.

오른쪽은 장곶돈대 사이에 있는 강화도 갯벌은 천연기념물 419호 지정이라 썰물이라도 관광객 출입금지로 되어 있습니다.

▲ 멀리 참성단(468m)이 보입니다.

▲ 북일곶돈대(北一串墩臺)에서 이어지는 강화 '나들길'이 통과하는 헬기장입니다. 하늘재까지는 제가 가는 참성단길과 공유합니다.

▲ '선수'에서 많이 왔네요. 벌써 4km 왔습니다. pm 12:53

▲ 참성단까지 등산로는 고개 약간 아래 있는데, 마루금이 지나는 고개는 '하늘재'란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 몸(身)이 분리된 매미를 유체이탈이라고 해야 되나요?

▲ 석골골 김촌저수지(여차리)입니다.

▲ 멀리 뒤로 장곶돈대에서 올라온 상봉산(△254.6m)이 보이네요.

▲ 강화도에는 다섯 개의 산이 흡사 의좋은 형제처럼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솟아 있죠. 북쪽부터 별립산, 고려산, 혈구산, 진강산, 마니산이 바로 그 다섯 형제인데,

화도면 북쪽에 보이는 산은 부근에 가릉(고려 원종)이 있는 진강산(443m)입니다. 마리산과 등지고 앉았죠. 

▲ 등산객은 대부분 상방리 쪽(화도, Bus 종점)에서 많이 올라옵니다.

▲ 점심 먹기 전에 참성단을 향하여 술 한잔 놓고 진가락님 절을 하고 있죠. 무사 산행에는 필수. 저처럼 머리 깨지지 않으려면? ^_^

▲ 들산님이 오랜만에 솜씨 발휘한 삼겹살 김치조림(찌게)입니다. 고추는 화도 들녁에서 20개 정도 주웠죠. pm 13:43

▲ 기수님 준비한 잔대와 더덕술입니다. 보해소주 25'C. 먼드래재-수리봉 잔대 더덕. 이칠봉 동릉 더덕이라고 씌여 있네요. 

▲ 상방리로 내려가는 갈림길 △314m 4'등 삼각점'입니다. pm 14:48

▲ 경지정리지구 흥왕리입니다.

▲ 참성단 바로 아래로 연결되는 372계단이 보이네요.

▲ pm 15:17이지만 벌써 낙조 기운이 퍼져 있네요. 가시거리가 좋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인가 봅니다.

▲ 마니산 단군로 정상부근 나무계단 설치공사로 만들어진 '삼칠이(372) 계단입니다. 2006년 6월 25일 준공.

▲ 산행 시작한 저 끝 장곶돈대 상봉산(254.6m)이 아스라이 보입니다.

▲ 참성단이라는 기록은 1264년 최초에 그 기록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백제시대에 강화의 이름이 '갑비고차’'였다가 고구려 장수왕 때 475년에는 혈구,'구멍 혈(穴)'자 '입 구(口)'자(字) 써서 혈구라고 이야기하는데,

강화도에 고려산 남쪽에 진달래 좋은 혈구산은 따로 있죠. 백두산과 한라산 중간에 근접(약 6km 한라산에 가까이) 있고

혈구산(穴口山·466m)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의 탁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강화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산이 혈구산입니다.

▲ 마니산 참성단은 단군 왕검이 단기 54년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했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과 숙종 26년(1700)에도 고쳐 쌓았다고 합니다.

▲ 저는 오전반으로 참성단에 올라왔고, 이따 저녁 pm 7:30 오후반 3명이 정수사에 도착합니다.(Taxi, 8,000원) 마중나가야 되죠.

참성단이 과연 단군의 제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강화도에는 많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있고,
단군과 연관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선사시대에도 상당한 정치세력이 형성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속인들이 한밤중에 철망을 넘고 들어가 무속행위를 벌이는 등 그동안 참성단 훼손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죠.

▲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으로 알려져 사적 제136호로 지정된 참성단. 단기 4344년 올해(2011년) 개천절인 3일에 강화도 '개천대제'가 열렸죠.

민족의 성지’이자 매년 전국체전의 성화를 봉송하는 강화도 마니산의 정상 참성단이 다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는데, 요근래 개방된 듯?

연초 일출을 기해 한시적으로 개방했으나 이번에 보니 마니산을 찾는 관광객의 참성단 민원이

지속적으로 들어갔나? 오후 5시까지 개방을 하더군요. 그것도 지속적으로 개방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펜스를 넘어가야 되나? 등산 중에도 어찌할까? 약간 고민이었는데, 관리인 입회 하에 개방이라 좋네요.

▲ 마니산은 동서 방향으로 길게 누워 있으며, 남쪽은 가파른 벼랑을 이룹니다. 정수사나 함허동천을 들머리로 하여 선수리까지 종주하는 코스가 제격입니다.

▲ 제단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깎은 하단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단은 지름 8.7m의 원형이고 상단은 6.6m의 정사각형 형태입니다.

둥근 하단은 하늘(天), 네모난 상단은 땅(地)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경주의 첨성대와 비슷하죠.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니산 정상 맞은편 465m봉에 참성단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 ▼ 참성단은 1964년 사적 제136호로,  참성단 안(內)에 있는 수령 150년 이상 된 소사나무는 천연기념물 502호로 지정됐습니다.

▲ 단군 왕검이 단기 54년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는데, 지금으로부터 4300여 년 전 단군과 그가 거느린

풍백, 우사, 운사들로서도 바닷가에 솟은 이 거대한 제단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던 것 같습니다. 
수천 년이라는 시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눈은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여실히 입증하는 대목입니다.

▲ 건너 편 H장 저 곳에 마니산 표시목(469.4m)이 세워져 있습니다. 마니산은 이름만 있을 뿐 실권은 참성단이 차지하고 있죠.

▲ 정수사 능선과 초피산 능선이 갈라지는 △469.4m봉입니다.

▲ 참성단(사적 제136호)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옵니다. 현지의 안내판에 쓰인 참성단(塹城壇)과 달리
참성단(塹星壇)으로 기록되어 있죠.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전한다는 내용과
단의 크기, 개수 내력 등에 대해 적고 있지만 참성단의 한자 표기는 塹星壇·塹城壇·參星壇으로 혼재되어 있습니다.

▲ 함허동천에서 텐트를 칠까? 생각도 했지만, 정수사- 마리산 등산코스로 다시내려와야 하는 불편이 있고, 체질상 산 아래는 맞지 않는다는

기수님 의견이 있어 언제나 처럼 산 적당한 봉우리 아래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정수사 내려가는 능선 적당한 곳을 잡을 겁니다.

▲ 관리인 없으면 참성단 위쪽에 올라가 막걸리 한잔 따르려고 했지만, pm 5:00까지 꼼짝않을 양반이라 그냥 나왔습니다.

펜스로 막혀 개방되지 않는 것에 비하면 천만다행이죠. 어차피 닫혀있었어도 펜스를 넘어갔을 테지만?

▲ 공식적인 마리산(摩利山, 472.1m)에서 보는 참성단입니다.

▲ 마니산 정상에는 별도의 표지석 없이 중수비안내판과 표지목만 있습니다. 대개는 여기가 마리산 정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지나치죠.

▲ 1716년 강화유수 최석항이 무너져내린 참성단을 수리하고 남긴 '참성단중수비입니다. 여기서 헬기장과 안부를 지나면 참성단에 이르죠.

▲ 마리산(摩利山) 정상 표시목 아래 흉물스럽게 산불감시초소가 들어와 있습니다. 정상의 의미는 없어진 거죠.

    ■ 참성단, 단군이 제(祭)를 지냈느냐? ■ 제목이 이런 식으로 나가면, 국조 단군 동상 목을 자른 개신교 몰지각한 사람들이 무척 좋아할 소재가 될 겁니다. 2011. 11. 12~13 강화도 마리산. 아침반, 저녁반 1박 야영산행. 마리산(摩利山, 472.1m)이라고 하나? 마니산(摩尼山)이라고 해야 하나? 예전에는 해발 469.4m로 표시되더니, 마니산 표시목에 472.1m로 씌여있더군요.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은 원래 '우두머리 산'이라는 뜻의 '마리산(摩利山, 472.1m)' 또는 이를 한자로 풀이한 '두악산(頭嶽山)'이라 불렀죠. 마리는 머리의 옛말이고요. 지금의 마니산(摩尼山)이라는 이름은 조선 중기에 승병들이 '보배 구슬'이라는 뜻으로 고쳐 부르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의 표기도 오늘과 같습니다. 이런 고로 원래의 이름을 찾자는 운동이 있어서 마리산(摩利山)으로 고치기로 했는데, 아직도 회복이 안되고 있네요. 강화도에는 다섯 개의 산이 마치 의형제처럼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솟아 있죠. 북쪽부터 별립산, 고려산, 혈구산, 진강산, 마니산이 바로 그 다섯 형제입니다. 이 중에서 마니산은 '마리산'으로도 불리는데 가장 으뜸이 되는 산, 우두머리 산이죠. 참성단의 존재로 말미암아 마니산은 강화도에서 그보다 높은 산들을 제치고 단박에 명산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죠. 바로 옆(북쪽)에 솟은 진강산(443m)이 그렇게 잘난 마니산과 등지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는 전설 역시 마니산의 범상치 않음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누구나 의심 한번 품어보는 것이 과연 단군이 참성단에서 제(祭)를 지냈냐는 것이죠? 지금으로부터 4300여 년 전, 단군과 그가 거느린 풍백,우사, 운사들이 서해 바닷가에 솟은 이 거대한 제단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는 겁니다. 수천 년이라는 시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눈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하는데 사실 정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고대 이래로 이 산 꼭대기에 참성단(塹星壇)이라는,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 있어서, 오늘날에도 전국체전 성화를 이 곳에서 채화하는 등 성스러운 산으로 중시된고 있고,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든지, 전국의 산 가운데서 가장 '기(氣)'가 세다고 표시하는 등 마니산이 지닌 신비로운 매력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들이 후세 사람들에 의해 덧붙여지면서 이 산이 한국 사람들에게 지닌 의미가 점점 더 크고, 영험한 것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지도를 보고 백두산과 한라산을 일직선으로 줄을 그었을 때 그 중간 지점은 대략 남양주시 천마산 서릉상의 이름 없는 봉우리 쯤 됩니다. 백두산과 한라산에서 똑같은 거리에 있는 산은 같은 강화도에서도 오히려 마니산보다 북쪽에 있는 혈구산이라고 봐야 옳고 실제로 혈구산 정상에 그렇게 씌여있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도 정확한 중간 지점이 아니라 남쪽으로 6km 정도 떨어져 있는 위치에 있죠. 다만 혈구산(穴口山·466m)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의 탁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강화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산이 혈구산입니다. 봄철 진달래로 유명한 고려산보다 오히려 정상부근 진달래는 혈구산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참성단이라는 기록이 1264년 최초에 그 기록이 나온다는데, 백제시대에 강화의 이름이 '갑비고차'였다가 고구려 장수왕 때 475년에는 혈구,'구멍 혈(穴)'자 '입 구(口)'자(字) 써서 혈구라고 이야기하는데, 마니산(摩尼山)이 설마 혈구산(穴口山·466m)은 아니겠죠? 마니산(469.4m)은 염해(鹽海)를 사이에 두고 김포반도와 마주한 강화도의 남단에 있는데, 그 뿌리는 안성 칠장산에서 시작하는 한남정맥과 이어집니다. 4세기 전까지만 해도 강화도는 김포반도에 연결된 육지였다니 오랜 침식작용으로 땅이 낮아진 뒤 침강운동에 의해 떨어져 나가 섬이 되지 않았으면 한남정맥의 대단원을 염해의 물길이 넘나들고 있지는 않을 테죠. 강화도는 '역사의 땅, 눈물의 섬'이죠. 마니산 참성단에서 제사를 올리던 선사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서세동점의 근대화 시기까지 파란만장한 역사가 이곳에서 펼쳐졌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전쟁이 나면 강화도는 늘 피난처가 되었고요. 육지와 섬 사이의 염하(鹽河)라는 천혜의 자연방어선과 드넓은 농토가 있었기 때문이죠. 1834년에 만든 대동여지도에 이미 오늘과 같은 모습인 것으로 보아 17세기 초에 간척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참성단이 단군 왕검이 단기 54년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 맞냐?는 질문은 답이 어렵습니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했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과 숙종 26년(1700)에도 고쳐 쌓았다고 하지만, 참성단이 과연 단군의 제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강화도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많이 있고, 단군과 연관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선사시대에도 상당한 정치세력이 형성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니, 전혀 단군과 참성단이 무관하다고 볼 수만도 없습니다. 강화도 첨성단의 천제(天祭) 의식! 마니산 동쪽 전등사가 자리한 정족산을 빙 둘러 쌓은 정족산성은 단군의 세 아들인 부루, 부소, 부여가 쌓았다고 해서 삼랑성(三郞城·국가사적 130호)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기록은 없지만 구전으로 전해지는 말들이 어느 정도 진실에 다가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전등사(傳燈寺)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토성(三郞城·삼랑성) 위에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때 세워진 고찰입니다. 참성단(사적 제136호)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옵니다. 현지의 안내판에 쓰인 참성단(塹城壇)과 달리 참성단(塹星壇)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전한다는 내용과 단의 크기, 개수 내력 등에 대해 적고 있는데, 참성단의 한자 표기는 '塹星壇, 塹城壇, 參星壇'으로 혼재되어 있습니다. 한자로 볼 때 이곳이 단군이 제사를 한 곳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어지는 것이죠. '세종실록지리지'도 '세상에 전하기를…' 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아마 민족의 성지로 일컬어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가 생기고 이의 영향으로 광복 후 10월 3일 개천절이 만들어지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전국체전 성화를 채화하면서부터는 특정 종교와 관계없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연스럽게 민족 성지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 같고요. 실제로 참성단에서 단군이 제(祭)를 올렸는 지는 지금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네요. 연간 5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마니산은 이제 와서 단군이 제(祭)를 지냈다는 사실 유무는 참성단의 존립에 그리 영양을 미치지 않습니다.

▲ ▼ 나무테크 계단을 내려가면 '함허동천'과 정수사 내림길이 갈립니다. 함허동천(涵虛洞天)은 마니산 동쪽 기슭의 계곡이죠. 함허동천은 초피산에서 마니산으로 이어지는 북동릉으로 내려갈 수도 있죠. '함허 득통 스님'이 마니산 정수사를 중수하고 수도한 곳이라 하여 그의 당호를 따서 이름 삼았다고 합니다.

▲ pm 7:30 택시로 정수사에 도착하는 30대 초초반의 아가씨와 일행 맞을 준비를 하느라 각자 무척 바쁩니다.

▲ 야영지가 마리산 1.7km 지점입니다. 정수사는 약 30분 정도 하산하면 내려갈 수 있고요.

▲ pm 7:00 쯤 도착 예정인 마리산(摩利山) 저녁반을 마중하려고 정수사 매표소로 내려왔습니다. 물도 받을 겸. pm 6:49


▲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1300 픽셀의 큰 그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갈수기라 물이 없어서 여기저기 서성이고 있었죠. 결국 공사하는 분들 콘테이너 화장실 수도물을 받았습니다.

▲ pm 7:08 도착한 저녁반 세 분 모시고 정수사 능선 야영지로 올라왔습니다. 이제 저녁먹고 마시고 시간보내게 되죠.

▲ 고맙게 유라시아 트렉 강팀장님이 '발타'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지난 황산갈 때도 한 병 선물하더니 이번에도......

▲ 더덕, 잔대술, 마가목, 소주, 발타 등 술이 많아 좋습니다. 밤새 마셔도 모자랄 양은 아니니까요.

▲ 찌그러진 컵은 제가 운악산 6m 떨어질 때 충격입니다. 전체 7명이 발타 한잔씩 딸고 건배죠.

▲ 조개와 고등어, 밤 등 여러가지가 알불에서 구워집니다.

▲ 알불을 빨치산 전법으로 흙에 묻은 후에 그 위에 메트리스와 침낭을 깔았더니 밤새 온기가 올라옵니다.

▲ 저녁반을 위해? 산행을 조금해야 하니, 어제 내려온 마리산- 첨성대 코스를 다시 갑니다.

▲ 정수산 암릉 올라와 초피산 3거리 갈림봉에 서니 멀리 마리산(摩利山, 472.1m)과 참성단이 보입니다. 날은 좋네요. 어제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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