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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모정- 영봉- 하루재 2011/01/09 22:00
Dan풍

▲ www.oksadary.com 10주년 기념산행에 갔습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 지도를 보실 수 있습니다.

▲ 30분 지각입니다. 수유역에서 120번 대신 우이동이라 써있는 130번 탔더니 방학동에서 우이동 도선사 입구로 넘어 오더군요.

▲ 120번 종점 그린파크 부근에서 만나 육모정고개- 영봉- 하루재- 숨은벽... 이런 식으로 가는데, 지각이니 모두 출발했죠.

▲ 오늘은 인수봉 귀바위를 동- 북- 서쪽까지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보게 되는 산행 코스입니다.

▲ 민소매의 단점은 버스에서 내려 산행 시작할 때 춥다는 겁니다. 엔진에 시동을 걸어 데워지기까지. ^_^

▲ 육모정고개 부근에 나무테크계단을 잘 만들어 놓았네요. 영봉과 반대방향 상장능선은 못가게 막았습니다.

▲ "님은 산을 그렇게도 사랑하더니 끝내 여기서 산과 하나가 되다." 이창열박사의 죽음에 이은상 선생이 쓴 추모비가 없어졌습니다.

 

▲ 육모정고개를 중심으로 상장능선과 우이능선(영봉-하루재)이 갈린다고 봐야죠.

▲ 만경대(800m)에서 하루재로 뻗은 능선이 서울-고양 시계죠. 그러니 인수봉과 백운봉은 행정구역상 고양 산입니다. 서울산 아님.

▲ 위문(716m) 안내판은 아닌 것 같네요. 위문이겠죠. 크기가?

▲ ▼ 하루재 위(만경대 시계능선) 쪽도리바위 줌인합니다.

▲ 하루재 위(만경대 서울-고양시경계능선) 쪽도리바위? Zoomin입니다.

▲  영봉(靈峰) 주변 추모비(追慕碑) 모두 옮겼다네요(2009년). 산친구들에게 일일이 물어 보지는 않았을 것이고, 공지만?

    □ 증발한 추모비(追慕碑) □ 영봉(靈峰)이란 이름이 무색합니다. 靈(영묘할 영), 귀신 영이란 소리죠. 우이능선(하루재- 육모정고개) 시작점인 육모정고개에 서 있던 고 이창열박사 추모비에 노산 이은상 선생이 글을 썼습니다. "님은 산을 그렇게도 사랑하더니 끝내 여기서 산과 하나가 되다." 깜쪽같이 없어졌더군요. 어! 내가 잘못 보았나? 다시 찾아보아도 추모비 자리에 덜렁 나무의자가 놓여 있을 뿐입니다. ▲ 2007년 가을 영남알프스 권총무, 달덩이님과 함께... ▲ 2008년 겨울 힐튼호텔 교육부 팀, 농심호텔 식음료 팀과 함께... ▲ 2006년 1월 영봉추모비입니다. 영봉(靈峰)에 오르니 그 기이함이 확인됩니다. 그 자리에 추모비가 세워진 것은 자연스러움입니다. 꼭 인수봉에서 죽지 않았어도 바위를 사랑하다 죽은 젊은이들에게 안식을 주는 거죠. 살아남은 자들이 찾아와 언제라도 죽은 자와 조우할 수 있는 뜻도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의 연결 통로죠. 영봉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도 숙연해지고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2006년 가을에 오른 영봉에서 몰상식한 인간의 영봉비석 파괴의 현장을 보았죠. 해머나 큰 바위로 추모비(追慕碑) 상단 귀퉁이를 3조각으로 박살을 냈죠. 후에 강력본드(?)로 이어 붙여 제 자리에 모양을 잡았지만, 누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 최소한 큰 망치 가져와 사람이 없는 새벽이나 어둠이 내리기 전 쯤 추모비(追慕碑) 귀퉁이를 왕 망치로 내리쳤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거든요? 영봉추모비가 훼손되어 즐거운 사람이 누구일까? 이득이랄 수는 없지만, 영봉비석이 조각나서 이득 볼 사람은 누구일까? ▲ 추모비 오석 기단을 보면, 광신도가 망치로 내려치다 모서리가 깨진 흔적이 보이죠? ▲ 영봉 명명인과 시인 정공채라는 글씨가 보이는지요? ▲ 2006년 첫눈내린 날11월 6일 올랐더니 말짱하던 추모비가... 靈峰(영봉)이란 한자 단어가 말해주듯, 많은 악우들의 비가 있는 곳이죠. 매년 일어나는 인수봉에서의 사고자나, 다른 곳에서 생을 다했지만 평소 인수봉과 산을 사랑한 악우들이 묻히는 장소가 영봉 주변입니다. 요즘이야 장비도 좋고, 대비능력이 좋아 박정희 유신정권시절 너도나도 바위를 도피처로 삼았던 시대와 다르게 젊은 사람, 학생, 청년(靑年)이 죽지 않습니다. 많은 바위꾼들이 죽던 시절은 지나간 것이죠. ▲ 숨은벽의 마지막 지점인 '추모비언덕'에 있는 추모비도 없어졌죠. 2006년 11월 올라보니. '영봉의 추모비석'이 깨지더니, '숨은벽의 추모비'마저 어디로 없어지고 흔적만...... 작은 몸(추모비)이라 망치로 몇 번 친 후에 숨은벽 정상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거나 범인이 가져온 배낭에 넣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영봉추모비가 3조각나고 숨은벽 정상 작은 추모비는 아예 흔적조차 없어졌는데 당시, 2개의 추모비가 동시에 상처를 받는 것도 우연(偶然)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왜? 누가? 무슨 이유로? 어떤 또라이가? ▲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문세광에게 총 맞은 날) 인수봉 오르다 떨어진 젊은 영혼을 추모하는 비인데, 당시 나이를 보면 이종환(20세) 대학생, 김동수(17), 김철훈(17세) 두 님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죠. ▲ 백운대 푸른 하늘에 그대들 산새 되어 날고 인수봉 바위틈에 그대들 산꽃으로 피고 우리는 여기 올적마다 그대들 이름 부르마 글 / 노산 이은상 그림 추모비에 써진 글입니다. 영봉 주변에는 공동묘지처럼 많은 추모(위령)비가 있어, 좋은 자리 구하기가 어려워 더 이상 추모비나 위령비가 들어서지 않는 정지(停止) 공간(空間)이죠. 재개발한다고 가짜전입자가 들어오는 상황이 아닙니다. 인수봉이 바라보이는 양지가 가장 좋은 장소이지만, 그냥 인수봉과는 상관없는 양지바른 곳에 비를 세우거나, 아예 바위 중간에 동판을 붙이기도 하는데, 동판까지 떼어냈는지는 급하게 내려오다 보니 확인을 못 했습니다. www.oksadary.com 10주년 산행에 30분 지각한 죄죠. 부지런히 발걸음 팔아 따라 잡아야 되니까요. 영봉~ 하루재 내림 길은 때론 따뜻하지만 대체로 바람이 많은 곳입니다. 바람도 꾀를 부리는데, 넘어가기 편한 하루재를 택합니다. 산봉우리보다. 고양시와 남양주의 찬 기온을 서울 우이동으로 전해주죠. 봄- 가을바람이 잦고 세서 어떤 때는 지나는 이가 추울 정도인지라, 한자리에 계속 자리해 있는 망자는 상당히 추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겨울 영봉에 오르면 효자리 계곡 쪽에서 안개가 가득하게 올라오죠. 북사면이라 눈도 삼각산 다른 곳보다 많고요. 이제, 인수봉을 바라보며 쉬는 넋, 혼들은 도매금으로 도선사입구 어디로 옮겨졌다는군요. 어거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추모비와 위령비를 그냥 놓아두지 않고, 망치로 추모비를 부순 어떤 또라이처럼 북한산국립공단에서 2009년 영봉 주변에 있는 추모비, 위령비를 모두 도선사 입구 어디로 옮겼다고 하는데 누구 마음대로 그런 짓을 했나 모르겠습니다. 하도 이상해 하루재에서 영봉으로 올라가는 나이 지긋한 공단직원에게 여쭸더니, 09년인가? 옮겼다는 대답을 해주더군요. (직원이야 뭔 죄, 하라는 대로) 이승과 저승길을 이어주는 공간, 몇 십 년째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터주 대감의 권리를 관리공단 윗사람 누구의 아이디어로, 그 아이디어가 혹 MB 추종자나 시류와 관련은 없겠지만, 30년~40년 된 역사의 현장을 한 두 사람의 탁상행정으로 깔아뭉갠 행위를 규탄합니다. 영봉추모비와 숨은벽 추모비를 부순 또라이와 같은 발상입니다. 영봉 주변 그 자리에 추모비가 있다고 세상에 책이 됩니까? 누(累)가 됩니까? 자라나는 학생들이 이념에 물듭니까?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큰 죄(大罪)를 지은 겁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엉뚱한 자리에 있으면 없는 것과 다름이 없죠. 수저가 수저통에 들어있어야 꺼내서 밥을 먹을 때마다 쓰죠, 진열장에 고이 모셔두면 수저는 용도(用途)가 없어집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산소, 도로 뚫린다고, 대규모 신도시 들어온다고 이장(移葬)하는 거야, 사회적인 현상이라 이해를 한다고 쳐도, 재개발한다고 가짜 전입자가 느는 것도 아니고, 길가는 사람 발목을 잡아 챈 것도 아니고 산이나 사람에게 아무런 피해도 안 주고, 오히려 경건한 장소라 청소년에게는 배움의 장이기도 한 산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누구 마음대로 파괴했는지요? 도대체 어떤 화상, 정책입안자의 획일적인 발상으로 이런 짓거리를 했는지? 나이들어 친구를 새로 사귀려면 많은 정성과 에너지를 쏟아야 되니 지금 있는 친구나마 토닥거려 잘 끌고나가 같이 인생을 사는게 편하고 지혜로운 인생이듯 제 자리에 말없이 잘 있는 거 '새마을사업' 초가집 지붕개량사업인가? 다시 제 자리에 갖다 놓기 바랍니다. 영봉추모비와 숨은벽 추모비에 망치질 한 사람처럼 욕먹지 않으려면......



    ahimsa_Richard_Yongjae_O_Neill_03_-_La_Romanesca.mp3

    Fernando Sor, La Romanesca(라 로마네스카)

    리차드 용재 오닐이 비올라로 연주하는 곡으로 원곡인 기타곡보다 조금 빠르게 연주합니다. Richard Yongjae O'Neill(1978~) http://www.yongjae.com/ (리차드 용재오닐 홈페이지) 리차드 마이클 오닐은 현재 미국 현악계의 떠오르는 유망주입니다. 강효 (줄리어드음대) 교수가 제자에게 용재(勇才?)라는 새로운 이름을 줬습니다. 씩씩하고 굳세라는 뜻에서 용기(勇氣), 현악기의 재능(才能)을 겸비하라는 뜻으로 '용재(勇才)'인가 보네요? 어머니는 6.25 당시 입양된 전쟁고아(孤兒)로 입양 당시 뇌손상(高熱, 고열)을 입어 언어장애를 갖게 되었고 정신지체인 상태로 용재오닐을 키웠다고 하네요. 어머니의 삶이 전해진 그의 삶의 배경 때문일까? 그의 비올라 소리에 귀가 솔깃해지고 가슴이 서늘해 지는 것은 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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