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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그 새콤한 맛에 배인 눈물 2009/03/30 21:54
이리아

 

살구 그 새콤한 맛에 배인 눈물 

 

살구.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키던 귀한 열매.

 

 

 백과사전에서 살구는,

살구[apricot]

 

장미과(薔薇科 Rosaceae)에 속하는 핵과(核果).
 

살구(Prunus armeniaca)
보통 세계의 온대지방에서 널리 심고 있다.
 
날것으로 먹거나 가루반죽에 넣어 요리하거나 통조림을 만들기도 하고 건조시켜 보존가공하기도 한다. 나무가 크고 넓게 퍼지며, 심장 모양의 잎은 암록색으로 잔가지에 곧게 달린다.
 
꽃은 활짝 피면 흰색을 띠며 매우 짧은 줄기의 마디에 한 송이, 또는 두 송이씩 핀다. 열매는 꽃이 피어 있는 동안 제꽃가루받이를 한 뒤 맺히며, 과육 속에 들어 있는 핵은 부드럽고 서양자두와 다소 비슷하지만 폭이 더 넓고 약간 납작하다.
 
몇몇 변종들은 열매가 거의 각이 없이 둥글거나 긴 타원형이며 약간 납작하지만 대개는 모양이 복숭아와 더 비슷하다. 익으면 털이 거의 없어지거나 아주 없어진다.
 
과육은 일반적으로 짙은 노란색에서 노란빛이 도는 오렌지색을 띤다. 몇몇 변종의 씨는 달콤하지만 유독한 것도 있다.
 
 

중국이 원산지로 중앙 아시아와 남동 아시아의 모든 지역, 유럽 남부와 북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 심고 있다. 18세기초 스페인 선교사들이 캘리포니아 남부 지방으로 들여간 열매 중의 하나인 것이 확실하며, 미국과수원예학회(American Pomological Society)는 1879년 미국에서 재배했던 11개 변종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복숭아나 살구나무 대목, 또는 복숭아, 서양자두, 살구나무에다 눈접[芽接]을 해 번식을 시키는데 접목시키기가 쉽다.
 
물이 잘 빠지는 양토질의 땅에서 잘 자라는데 단단한 곳보다는 무른 곳이 좋다.
 
대부분의 변종들은 복숭아만큼 겨울 추위를 잘 견디지만 복숭아의 꽃눈보다 더 빨리 벌어지는 꽃눈은 늦추위에 종종 죽기도 한다. 나무는 가뭄에도 잘 견디며 적당한 조건에서는 100년 이상을 사는 것도 있다. 최대 생산국은 스페인이며 이란·시리아·미국·프랑스·이탈리아 및 유럽 중남부 등에서 생산된다.
 
비타민 A가 풍부하며 천연당류의 함유량이 높다. 말린 살구는 철분의 매우 좋은 섭취원이다. 한국에는 〈삼국유사〉에 살구꽃을 보고 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대목이 있는 점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살구를 심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봄에 꽃이 아름답게 피며, 여름에는 과실이 열리기 때문에 관상수로서뿐 아니라 과수로도 훌륭하다. 살구씨 말린 것을 행인(杏仁)이라고 하여 진해·천식·호흡곤란·신체부종 등의 치료에 쓰는데, 서양에서는 수증기로 증류해서 만든 수용액인 행인유를 연고제나 주사약으로 쓴다.
 
 
저도 오늘 처음으로 살구가 장미과 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았답니다.


          
            
살구가 벌써 이렇게 익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주황빛 살구!

추억이 참 많은 과일입니다.

어렸을 때 즐겨부르던 동요 "고향의 봄" 가사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도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노래 처럼 제 고향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아주 깊은 산골이었습니다. 







그 흐드러진 봄날!
봄빛에 취해 몽롱한 내 시야에 눈처럼 흰 자두 꽃과 화사한 살구 꽃이 가물거리면.
내 고향에서는 자두를 옹헤라고 했답니다.

또한,
우리 집 주위에는 옹헤 밭이 줄지어 있었지요. 
지금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자두가 아니라 천도복숭아 크기의 주먹만한
먹음직스러운 탐스런 자두였지요.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봄이 오기 무섭게
산 곳곳을 붉게 물들이여
옹긋쫑긋 피어나는 참꽃
(진달래를 우리 고향에서는 참꽃, 철쭉을 개참꽃이라고 불렀다. 
참꽃은 먹을 수 있는 꽃, 개 참꽃은 먹으면 큰일 나는 꽃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산으로 내달려
꽃잎을 따 먹었다.

먹고 또 먹고
하지만 배가 부를 턱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먹을 것이 지천으로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마냥 즐겁기만 했다.


왔는가 싶으면 가 버리는 봄이
절정에 다다를때 
호랑이보다 그 무서운 보릿고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쌀 한줌을 넣고 뜯은 나물을 듬뿍 넣어 묽게 죽을 쑤어
그것마저 맘껏 먹을 수 없었던 시절.

푸릇푸릇 익기 시작한 보리를 보며 우리는 너나 없이 침을 꼴깍 삼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이미 우리는 묵시적으로 보리서리를 하기로 등교 길에 단단히 약속을 한 터.

등에 둘러메었던 책보를 내 동댕이 치고,
통통하게 살이오른 보릴 뽑고, 북데기를 긁어모았다.
(북데기는 불쏘시개로 쓰는 마른 풀을 일컫는다.)





북데기와 보릿대 위에 보리 모가지(?)를 올려놓고 불을 붙인다..
모두가 나무로 밥을 짓고 난방을 하던 때라, 나무를 구하는 일은 간단치가 않았다. 

잘 마르지 않은 보릿대는 매캐한 연기만 피워댔고
눈물 콧물이 뒤범벅이 된 얼굴로 보리가 익지 않을까봐
애가 탄 우리는 연신 책으로 책받침으로 부지런히 부채질을 해댔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보리가 익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햇보리를 꼬슬려(불에 그을려)먹는다고 했습니다.  
불에 살짝 그을린 보리를 하나씩 손에 놓고 두 손바닥으로 싹싹 비비면

빛깔도 너무나도 고운 푸르스름한 보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들 만면에 가득 퍼지는 행복한 웃음.
서둘러 입안에 털어넣기 아까워 한 일씩 한 알씩 꼭꼭 씹어서 삼키면.

아,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궁할 때,
때맞추어 살구와 옹헤가 익지요. 

상대적으로 살구에 비해 값이 싼 옹헤(자두)는 그럭저럭 우리들 차지가 되었지만,
값이 무척 비쌌던 살구를 얻어 먹기란 계란 한 알 얻어먹는 일 만큼이나 힘들었습니다.

살구는 장에 내다 팔아 돈을 만들 귀중한 농산물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살구란,
비 바람에 떨어진 낙과뿐,

그나마 남존여비 사상에 투철한 시대에 여자로 태어난 나에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떨어진 살구는 모조리 아버지와 오빠 몫이었으므로..

엄마가 손에 쥐어주기 무섭게 오빠 의 입안으로 사라지는 데 반해 
칠남매 중 누구보다 나를 예뻐해주신 아버지는 달랐다.

차마 여러 형제들이 보는 가운데 줄 수가 없으셨던지
눈으로 살그머니 나를 뒤란으로 불러내셨다. 

그리곤 살며시 내 손에 쥐어주시며 아버지는 내게만 겨우 들릴 듯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얼른 입에 넣거라. 니 엄마 보기전에."





아,
그때의 행복함!

아버지가 사라지게 무섭게 커다란 살구를 반으로 쪼갠다.
잘 익은 살구는 어찌 그리 마치 칼로 자른 듯 씨에 살 한점 붙지 않고 잘 쪼개지는지.

절반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나머지 절반은 호주머니에 소중히 넣어둔다.

그리고도 못미더워
살구가 든 호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러나 번번이
나머지 절반의 살구는 내 몫이 아니었다.

언제 오셨는지 엄마가 내 등을 사정없이 쥐어박는다.


"내가 못살아, 이놈의 가시내 땜에, 느그 아버지 살구 얼매나 좋아하시는 디, 아버지 입맛 다시게 놔두지 그걸 다 뺏아처먹냐?"

"내가 안 먹는다고 해도 아버지가 먹기 싫다고 억지로 줬단 말이야!"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으로 원망스럽게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내 억울함을 호소한다. 

바로 그 살구!

몰래 내게 살구를 쥐어주시던 아버지,
그런 내가 너무나도 미워 있는대로 눈을 흘기시던 어머니,

너무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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