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6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오시는 날. 굴뚝을 타고 들어와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시는 날.
그 날은 하루종일 설레이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는 날이되곤 했다. 무엇을 주시고 가실까?
난 착한 아이였을까? 나쁜 아이였을까? 그런 생각에 선물을 못받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난 마지막까지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들을 생각한다. 가지고 싶었던 것을 산타가 주고 가기를 기도했다.
'혜화 문방구' 창가에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며 가지고 싶다 생각했던 근사한 비행기 모형.
내가 사달라는 무언의 시위를 하며 문방구 창가를 벗어나지 않았어도,
아버지는 그 때 내게 그 비행기를 끝내 사주지 않으셨더랬다. 많이 섭섭했었다. 그 선물을 마음 속으로 바랬다. 그런 소원을 빌며 잠들었다.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손을 뻗어 머리맡을 더듬었다.
잡히는 것이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왔다 갔다. 비행기 날개가 내 작은 손에 잡혔다. 그 기쁨.
난 그 것이 아버지가 내게 주신 선물이었다는 걸 진짜로 몰랐다. 아버지가 산타였다는 걸 진짜 몰랐었다.그 때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는 지. 아니였는 지는 기억에 없다.
가지고 싶었던 그 비행기의 모습만은 지금도 또렷하다. 그 비행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2
1970년 크리스마스 데이....
이제 나에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난 이제 어엿한, 까만 교복과 학생모를 쓴 중학생이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산타는 내게 안온다.
그 대신 아버지가 그 선물을 대신 주시기 시작하셨다. 물론 전부터 아버지가 산타셨지만, 공식적으로
이제부턴 산타는 내게 더 이상 없었다. 이의없이 나의 성장에 따른 변화를 받아들였다. 불만 없었다.
아버지가 대신 한다시지 아니한가. 그러면 됐다 싶었다. 늘 하던 버릇대로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을 더듬었다. 손에 잡히는 건 더 이상 장난감 따위는 아니었다. 중학생을 위한 선물답게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갖고싶었던 당시 내가 알던 최고의 명품 "파커 21 만년필" 날씬한 까만색 몸통이 반짝였다. 잉크를 재어서 칠성노우트에 선을 그어본다. 가늘고 파란 파커 라인이 노우트를 가르며 그어진다. 그 쾌감.
하루 온 종일을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만년필 펜촉을 길들인다며
칠성 노우트 한권을 낙서장으로 다 써버리고 말았다. 그 소중했던 만년필은 이제 내게 없다. 어디로 갔을까?
#3
1976년 크리스마스.
아버지와 스카라 극장을 갔다.
프랑스 명배우 필립 느와레가 나오던 영화 "추상"이란 영화를 봤다.
아버지와 아들이 프랑스 영화 한편을 감상하고 나오다 아버지가 장대같이 커버린 아들을 툭친다.
"가죽 잠바 하나 사줄까? 너 가죽 잠바 입고싶다고 했잖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스카라 극장에서 나오다보면 당시 가죽 잠바를 팔던 숍이 하나 있었다.
근사한 가죽 점퍼들이 진열돼있었다.
아버지는 여자같이 예쁜 알랑들롱보다는 터프가이 장폴 벨몽도를 더 좋아하셨다. 장폴 벨몽도가 입던 풍의 다소 깡패스타일의 가죽 점퍼를 권하신다. 난 당시로선 다소 튀는 색,
옐로우 톤의 가죽 점퍼를 사서 입었다. 아버지는 포장을 하려던 주인을 제지하며
나를 보시며 바로 입고 나가라신다. 싱긋웃으시며 보기좋다 하셨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닌가 한다. 지금 그 점퍼는 내 처제에게 넘겼다 처제가 좋아라 수선해서 입고다닌다.
이 곳 프라하로 오기 전, 처제에게 넘기며 그 점퍼에 담긴 이야기를 해주며 줬다....
#4
1983년 크리스마스 선물.
난 밤을 새워 포장지를 만들었다. 그녀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하기 위한.....
그녀에게 줄 선물을 곱게 포장할 포장지는 특별해야했다. 한지를 사고, 크레용을 하나 샀다.
한지를 펼치고 마음에 드는 색으로 덧칠을 해가며 빈틈없이 두텁게 크레용 칠을 했다.
연두색과 노란색으로 칠했다. 그리고 옷핀으로 'Merry Christmas'라고 새겨넣었다.
그리고 내 사진을 넣은, 뚜껑을 열면 크리스마스 캐럴 고요한밤 거룩한 밤이 연주되는
자그마한 열쇠고리형 사진 케이스를 곱게 포장해 넣었다. 내가 안고싶어하던 여인에게 선물한 최초의 선물이었다. 이젠 낡을대로 낡아서 태엽조차 제대로 감기지 않게돼버린 그 뮤직박스는 아직 진열대에 놓여있다. 아직 거기에 낡은 사진으로 빛바랜 채 끼어있는 작은 사진의 청년은 여전히 청춘이다.....
그녀가 내 앞에 포장된 뭔가를 놓으며 풀어보라한다. 얼굴이 살짝 상기된 채.
명동 대연각 건물 아래 한 커피숍 '꿈처럼 꿈과같이...' 사이펀 커피가 보글대며 커피를 내린다.
향기로운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포장을 뜯었다. 크고 작은 스케치북이 세권이 있었다.
초록색 톰보이 일제 잠자리표 4B연필 한다스. 질좋은 고무 지우개 몇개.....
그녀는 달동네 판자촌을 테마로 그리기를 좋아하던 미술학도였다.
그녀는 내가 그림 그리는 취미를 버리지 않기를 원했다.
가 한 때 화가가 되기를 꿈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뭔가 계속 그리기를 원했다.
난, 그때부터 일주일을 오로지 그 스케치 북에 뭔가를 채워넣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밤새워 뭔가 채워넣기 시작했다.
여인의 누드 스케치를 그렷고, 손을 드로잉했고, 여인의 얼굴을 스케치했고, 포효하는 퓨마를 그렷다.
대장부리바 포스터를 보며 토니 커티스의 슬픈 표정을 그렷고, 아름다운 크리스티네 카우프만은 그리다 지워버렷다. 그녀가 혹시라도 기분나빠할까봐.....
그 그림책은 지금도 그녀가 그녀의 낡은 상자에 보관하고 있다. 내가 먼 길 떠나고, 자기도 먼 길 떠날 적에 함께 태워달랠 거라며 보관하고 있다.
아직도 서툰 그 연필화로 가득한 낡고 빛바랜 그 스케치북은 그 녀에겐 보물이다.....
#5
200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미스터 K, 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해피 뉴이어." '마르띠나'로부터 작은 동 종을 선물 받았다.
언제든 자기가 필요할 때면 이 작은 종을 울리라며 선물했다. 장난으로 동 종을 흔들어 울려봤다.
진짜 쪼르르 달려오며 뭐가 필요하냐며 묻는다. 그냥 한번 울려봤다니까 눈을 곱게 흘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고마웠다....
"미스터 K, 베셀레 반호체(즐거운 크리스마스)" '다비드'로부터 두툼하고 편한 방석을 선물 받았다.
내가 사용하던 방석이 다 터져서 보기가 흉했다며 내민다. 엉덩이에 깔고 앉으니 참 편하다.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제꾸이 밤 모츠 크라트 다비드....정말 고마워 다빗"
"아빠, 싸구려 스킨 로션은 이제 그만! 이 거 발라요. 아빤 이 곳 보스니까 보스 스킨을 발라야지...."
'모'가 너스레를 떨며 고급 스킨 로션을 내민다. 싸구려 스킨 로션을 바르는 아버지가 보기 싫었나보다.
기특한 녀석....그 녀석이 지원한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란다.....
"아빠. 난 향수.....나도, 싸구려 향수는 이제 그만!" '현'이가 고급 향수 한병을 내게 내민다.
포장을 뜯고 향수를 듬뿍 몸에 대고 뿌려봤다. 향기로웠다. 그 아이의 고운 마음처럼.....
그 녀와 난, 아이들로부터 선물을 받고 서로 마주 바라봤다. 그리고 미소지었다......
나의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아주 평범하게 그러나 아주 행복하게.....
프라하의 크리스마스는 너무나 조용하게 흘러가고 있다.....
Praha 11:40am







